[편집장 칼럼] 청와대 홍보팀의 말씨


양정철 청와대 홍보기획비서관이 또 화가 단단히 난 모양이다. 양 비서관은 9일 대연정 논란과 관련해 청와대 브리핑에 기고한 ‘당신의 대안은 무엇인가’라는 도발적인 제목의 글을 통해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를 정면으로 공격했다. 박 대표가 1일 기자회견을 열어 노무현 대통령의 연정 제안을 거부한 데 대해 발끈한 것이다.

양 비서관은 “한국 정치의 비정상구조에 대한 진지한 고민의 흔적이 없어 허탈하다”며 “박 대표의 반응은 한마디로 책임감, 결단, 역사의식, 깊은 성찰, 일관성 등 5가지가 없는 5무(無)”라고 원색적으로 비난했다. 또 “연정을 안 한다고 선언하고 끝낼 일이 아니라 구체적 대안을 내놓아야 한다”, “큰 지도자가 되려면 기득권에 안주해서는 안 된다. 배짱 있는 자기 결단과 도전의 용기가 있어야 한다”고 충고의 말까지 거침없이 썼다.

이를 두고 일각에서는 청와대 2급 비서관이 어떻게 제1야당 대표에게 훈계하듯이 공개적으로 비난할 수 있느냐는 논란이 빚어졌다. 그러나 비판 자체는 그렇게 문제삼을 일이라고는 생각되지 않는다. 자유민주주의 국가에서는 누구나 비판하고 비판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다만 그 비판이 얼마나 정당하고 합리적이냐가 중요할 따름이다. 그런 점에서 양 비서관의 글에는 몇 가지 문제점이 발견된다.

우선 글의 분위기가 너무 거칠다. 전반적으로 차분함, 냉정, 부드러움, 세련됨보다는 분노, 비아냥, 약점 잡기, 과잉 해석이 두드러진다는 느낌이다. 홍보 담당자가 쓴 것이라고 믿기지 않을 정도다. 어느 정당의 입심 센 대변인이 상대 당을 공격하기 위해 퍼부은 내용 같다. 일반적으로 홍보라고 하면 매체에 일정한 자료나 정보를 제공해서 개인 또는 조직에 대한 대중의 호의적인 이미지를 이끌어 내는 활동을 의미한다.

이런 점에서 볼 때 양 비서관의 글이 고유 직분에 걸맞는 ‘홍보’의 효과를 가져왔다고는 보기 어렵다. 양 비서관은 지난해 7월에도 행정수도 이전에 대한 언론 보도를 비판하며 특정 신문사들을 겨냥해 “저주의 굿판을 집어치워라”는 공세적인 글을 올려 논란을 자초한 바 있다.

두 번째 문제는 주장하는 논점이 합리적이지 않다는 것이다. 양 비서관의 글은 연정에 반대하면서 왜 대안은 내놓지 않느냐고 윽박지르는 투다. 그런데 상식적으로 생각할 때 어떤 이슈에 대해 대안을 내놓고 안 내놓고는 각 정당의 자유다. 더군다나 정책 대결을 벌이는 정치인도 아닌, 단순 홍보 담당자로서 그렇게 핏대를 세우며 강압적인 태도로 나올 일이 아닌 것이다. 점잖게 요구를 해도 충분히 메시지는 전달될 수 있다.

청와대 홍보 담당자 중 조기숙 수석도 드센 언사를 쓰는 데는 남한테 뒤지지 않는다. 주요 쟁점이 돌출될 때마다 비장한 표정과 강한 어조로 반박하는 모습을 종종 볼 수 있다. 국정원 도청 파문을 둘러싸고 제기된 음모론 논란과 관련, 10일 자청한 기자간담회에서도 예외는 아니었다.

“어처구니 없다” “기가 막힌다” “공격을 받으니 참 힘들다”며 격앙된 감정을 여과 없이 드러냈다. 청와대와 직접 관련은 없지만 김창호 국가홍보처장도 지난달 서울대의 2008학년도 입시안에 대해 “비겁한 짓” “강남 일부 특권층에 기대 뭘 해보려는 것” 등 거의 막말 수준의 발언을 해 구설수에 오르기도 했다.

이제 청와대를 비롯한 행정부 홍보를 담당하는 사람들의 입은 순화되어야 한다. 그래야 가뜩이나 이런저런 일로 짜증이 나 있는 국민들을 조금이나마 편안하게 해 줄 수 있다. 화가 나 속에서 불덩이가 솟아올라도 홍보 담당자들의 말과 글은 부드러워야 한다. 그만큼 참고 절제하는 노력이 필요한 것이다.

부시 미국 행정부의 국무부 홍보 담당 차관인 카렌 휴즈는 ‘홍보의 천재’ ‘홍보의 달인’으로 통한다. 휴즈는 지난해 대통령 선거에서 부시의 요청으로 선거 운동을 도와 재선에 결정적인 기여를 했다. 부시에게 솔직하고 과감한 이미지를 심어주고, 주요 선거 인터뷰 때마다 여유로운 자세로 대응해 승리를 이끌었다. 지금은 이라크 전쟁 이후로 악화된 이슬람권의 반미 감정을 누그러뜨리는데 힘을 쏟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홍보 담당자는 정치인과 달라야 한다. 국회의원이 과격한 말로 치고 받고 입씨름을 벌여도 홍보 담당자는 차분하고 여유롭게 대응하는 것이 기본이다. 온갖 현안으로 바람잘 날 없는 청와대지만, 이럴수록 더 부드럽고 유머 있는 홍보지기를 보고 싶다.

입력시간 : 2005-08-17 17: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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