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스컴과 현대사회] X파일 사건 본질과 언론 역할


X파일 사건이 갈수록 복잡해지면서 그 본질이 흐려지고 있다. X파일 사건은 이상호 기자와 MBC의 도청 테이프 취재 보도에 관련된 위법성 문제, 도청 테이프에 담긴 정치ㆍ재계ㆍ언론 복합체의 위법성과 부도덕성 문제, 안기부(국정원)의 불법도청과 주요 인사의 인지 문제 등을 담고 있는 복잡한 사안이다.

먼저, 이상호 기자와 MBC의 취재 보도 위법성 문제는 그 보도가 갖고 있는 공익성의 정도로 볼 때, 국민의 알권리나 표현의 자유 측면에서 얼마든지 접근 가능하기 때문에 어떻게 보면 단순한 문제라고 할 수 있다. 안기부(국정원)의 불법도청 문제도 과거사 청산 차원에서 접근할 수 있다. 그러나 도청테이프에 담겨 있는 정ㆍ재ㆍ언 유착구조의 문제점은 현재 진행형이고, 우리 사회의 민주주의와 사회정의, 경제발전을 위협하는 심각한 문제이기 때문에 X파일 사건의 본질이라 할 수 있다.

삼성이 참여정부의 주요 국가 아젠다를 제공하고 있으며, 경제활동의 규칙을 바꾸려 하고, 재벌을 감시 견제해야 하는 검찰과 대학과 언론이 삼성의 영향력에서 자유롭지 않다는 주장들이 널리 공감을 얻고 있는 현실을 감안하면 정ㆍ재ㆍ언 유착구조가 현재 진행형임이 확실한 것 같다. 따라서 검찰의 수사방향이나 여야가 다투고 있는 특검이나 특별법 제정에 있어서 기본방향은 도청 테이프 내용의 진상규명을 통한 정ㆍ재ㆍ언 유착의 위법성을 드러내는 것이어야 할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X파일 진상규명에 대한 기대가 과연 실현될 수 있을 지를 의심해야 하는 흐름이 형성되고 있다. 이미 X파일 사건이 시작되었을 때부터 일부 언론과 정치권은 안기부(국정원)의 불법 도청 문제나 이상호 기자와 MBC의 취재 보도과정의 위법성만을 문제 삼았고 검찰의 수사방향도 그 틀에서 벗어나지 않았다. 여기에 국정원의 불법도청 공개는 이러한 물타기에 힘을 더해 주는 역효과를 낳기도 했다.

도청 테이프 내용공개에 부담을 갖고 있는 일부 정치권과 언론은 물론이고 대광고주인 삼성의 힘을 의식한 일부 언론이 이러한 흐름에 동참하였다. 언론의 눈치 보기는 방송 3사 광고의 9% 이상과 일부 신문 광고의 경우에는 15% 이상을 점하는 경우까지 있다는 삼성그룹의 영향력을 감안하면 ‘당연’하다고 할 수 있겠다.

여기에 도청 테이프 내용보다 도청 자체가 문제라는 대통령의 모호한 발언이나 국민의 정부 기간 불법 도청 의혹의 지나친 부각은 X파일 사건의 본질을 왜곡시키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기 시작했다. 이를 계기로 일부 언론은 이른바 음모론을 확대생산하기 시작했다. 정치권과 언론이 이를 서로 주고받으면서 확대 생산하는 음모론의 생산방식이 이번에도 적용된 것이다.

결국 여권의 일부가 빌미를 제공하고 일부 언론과 야당이 확대생산하기 시작한 음모론은 김대중 전 대통령의 전격 입원을 계기로 X파일 사건의 진상규명에 있어서 암운을 드리우고 있다.

X파일 사건의 본질은 재벌이 정ㆍ재ㆍ언 등을 조직적으로 관리하고 더 나아가 정치권력을 창출하려고 시도했고 그 과정에서 불법과 부도덕한 일이 벌어졌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부 언론의 물타기와 정치권의 정략적인 대응으로 도청테이프 조사를 통한 X파일 사건의 진상규명은 실패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언론의 역할은 우리 사회의 중요한 사건들의 본질을 국민들이 놓치지 않도록 경계하고 그 본질을 흐리기 위해 등장하는 지엽적인 문제들을 정리해주는 일이라고 하겠다. 아무리 국민들이 도청 테이프의 내용 공개를 요구하고 시민단체 등이 노력한다 해도 언론이 계속해서 X파일 사건의 본질을 흐리고 음모론 등으로 비본질적인 갈등만을 부각시킨다면 우리 사회의 뿌리 깊은 정ㆍ재ㆍ언 유착의 모순구조를 개선할 수 있는 기회는 사라지고 말 것이기 때문이다.


이용성 한서대학교 신문방송학과 교수


입력시간 : 2005-08-17 17:53


이용성 한서대학교 신문방송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