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스컴과 현대사회] 공영방송의 살 길은


2003년부터 한국의 공영방송은 심각한 도전에 직면하고 있다. 공영방송의 미디어비평 프로그램을 포함하는 개혁 프로그램, 개혁적 인사, 수신료 제도, 지상파 방송의 독과점 구조 등이 문제가 되었다.

그 도전에는 방송의 여론 주도력을 견제하고, 신문과 지상파 방송 겸영 금지를 해제하려는 일부 세력의 의도가 어느 정도 반영되어 있었다. 그러나 공영방송을 포함하는 지상파 방송의 진정한 위기는 정치적 측면이 아니라 미디어 환경의 변화에서 오고 있었다.

지상파 방송이 시청률 시장과 광고 시장에서 점하던 독과점 구조가 해체되기 시작한 것이다. 인터넷 언론, 케이블 방송 등의 영향으로 지상파 방송의 시청 점유율와 광고 점유율도 서서히 감소하기 시작하였고, 미디어 이용 방식도 텔레비전 의존에서 벗어나기 시작했다.

연예기획사가 스타권력을 매개로 방송사에 횡포를 부리는 것도 그 동안 황제 권력을 행사하던 지상파 방송의 독과점 구조가 해체되고 있는 징후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지상파 방송의 독과점 구조 해체는 바람직한 면도 있지만, 그것이 공영방송의 위기로 연결되고 있는 것은 우려할만하다. 공영방송이 갖는 사회적 가치는 변함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최근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KBS와 MBC의 방송사고와 비리 사건은 지상파 공영방송의 심각한 내적 위기를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MBC의 <음악캠프>와 KBS의 <올드미스 다이어리>가 알몸을 노출하거나 부모를 때리는 내용을 방송하여 사회적 비판의 대상이 되었고, 방송위원회의 중징계도 받았다. 하지만 인디밴드를 소개하여 문화적 다양성을 확대하고, 노인 등 소외 계층에 대한 관심을 환기한다는 두 프로그램의 기획 의도만은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전방위 로비스트 홍씨 사건이나 S프로덕션 거액 금품 향응제공 사건 등은 심각한 문제라고 보인다. 사건의 내용뿐만 아니라 공영방송의 X파일 보도가 실망감을 안겨주고 방송사고가 계속되는 상황에서 이 두 사건에 대한 공영방송사의 미흡하고 안이한 대응은 비판 받아 마땅할 것이다.

이제 KBS와 MBC의 결단과 강력한 개혁추진이 요구된다. 방송사 내의 윤리점검 시스템을 정비하고 윤리강령을 노사협약을 통해 의무 규정으로 만들어 비윤리적 행위자는 중징계 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낡은 외주제작 시스템 등 비윤리적 상황을 야기하는 제작구조 등도 정비하고 내부 긴장도를 높여 다시는 그러한 사건이 발생하지 않도록 해야 할 것이다.

우리가 기대하는 공영방송의 개혁은 KBS와 MBC의 공영성을 강화하는 것이고, 공영성의 강화란 사영방송이나 신문에 비해 높은 윤리적 기준과 투명성을 바탕으로 국가권력과 시장권력으로부터 저널리즘과 문화의 독립성, 자율성을 지켜 나가는 것을 의미한다.

두 공영방송에 개혁적인 인사가 사장으로 취임했다고 하지만 내외적 저항과 추진력의 한계로 이루어 낸 개혁 성과는 많지 않다. 시장지배적 신문들이 과장하곤 하지만 개혁 프로그램이란 것도 몇 개 되지 않고 뉴스나 오락프로그램도 달라진 것이 없으며, 구조조정의 성과도 별로 보이지 않는 실정이다.

이제 윤리의식의 제고는 물론이고 프로그램과 경영 등에서 좀더 가시적인 개혁이 추진되어야 할 시점에 온 것이다.

방통융합의 시대에, 통신자본이 방송영역을 위협하는 현실에서, 공영방송의 역할인 문화의 다양성과 공공성을 지키고 민주적 여론형성의 마당을 제공하는 일은 더욱 더 중요할 할 수밖에 없다.

특히, 공영방송의 위기는 국가권력과 경제권력을 견제하면서 우리 사회의 다양하고 민주적인 여론을 형성하는 영역인 공공영역의 위기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에 심각한 문제다. 공영방송 종사자들의 분발을 촉구한다.


이용성(한서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입력시간 : 2005-08-30 16:00


이용성(한서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yong1996@lyco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