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와 오늘] 역사 교과서와 미래


칼 카이저(97)는 하바드대학교 케네디스쿨 교수다. 우리에게는 다소 생소한 그는 태평양경제협력체 총회에 참석하기 위해 7일 서울에 들어왔다.

그는 1973년부터 2003년까지 독일 외교연구소 소장을 지냈고, 빌리 브란트, 헬무트 슈미트 전 총리의 보좌관을 지내기도 했다.

그에게 조선일보 이한우 기자가 한ㆍ중ㆍ일의 과거사 반성과 동북아 공동체 구성에 대해 독일의 경험에 의한 방법을 물었다.

“분명한 것은 일본에도 과거사 반성에 대해 부정적 태도보다는 긍정적인 목소리를 내는 사람들이 훨씬 많다는 것이다.

따라서 정부나 정치 지도자들의 역할이 대단히 중요하다. 독일 지도자들은 긍정적인 목소리를 담아 독일을 대표해왔다.”

“일본의 고이즈미 총리는 종전 60주년 행사 때 야스쿠니 신사에 참배하지 않았다. 그리고 주변 국가들과 미래를 건설하자고 제안했다.

한국과 중국에게는 이것이 기회다. 아시아 공동체 결성은 일본 혼자서도 할 수 없지만, 한국이나 중국 혼자서도 할 수 없다.

죽은 자를 위해 참배하기보다는 앞으로 살아갈 사람들을 위해 서로 손 잡는 게 훨씬 더 현명하다.”

카이저 교수의 ‘참배보다 동북아 연대의 미래’ 발언 의미를 이해한 까닭일까. 중국 상하이 중학은 9월 신학기부터 외국인 학생을 대상으로 국제부에 한중일 3국 공동 역사 편찬위가 낸 ‘동아시아 3국의 근현대사’를 역사과목 필수 교과서로 채택했다.

지난 5월 서울에서는 ‘한중일 공동 역사 편찬위’가 낸 이 책이 ‘미래를 여는 역사’라는 이름으로 나왔다.

책 머리에는 ‘한중일이 함께 만든 동아시아 3국의 근현대사’라는 문구가 찍혔다.

이 책의 일본측 집필자 중 한 사람이었던 릿쇼 대학의 강사이며 후쇼사의 ‘새로운 역사교과서’ 채택을 반대하는 ‘어린이와 교과서 전국네트21’의 다와라 요시후미(64) 사무국장은 ‘새로운 역사교과서’ 채택률이 0.38%에 그친 데 대해 안심하며 말했다.

“결과에 만족하지는 못하지만, 선방한 것은 틀림없습니다. 지난달 초까지만 해도 10%내외까지 가는 게 아닌가 하는 불안감이 있었습니다.

우익 정치인들이 대놓고 ‘새로운 역사교과서를 위한 모임’을 선전하는 기세가 대단했기 때문이죠.

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일반 시민들의 양심과 저력이 빛났습니다. 한국 단체들의 원활한 협조도 큰 힘이 됐습니다.”

카이저 교수의 과거사 반성에 긍정적인 소리가 높다는 이야기, 상하이 중학의 3국 공동편찬 교과서 채택, 일본에서 584개 학교가 이 교과서를 채택하는 등 지구에서의 양심적인 시민들의 증가는 1~2년 만에 이루어진 일이 아니었다.

한국어 판 3국의 근현대사 교과서인 ‘미래를 여는 역사’의 종장 ‘제3절 역사 교과서 문제’에는 세계 2차 대전 종전 후 60년 세월 속에 ‘지난 날의 역사 교과서’에 대해 2쪽, 일본에서 역사 교과서에 대한 문부성의 검열이 부당하다는 것을 소원한 이에나가 사부로(1965년 당시 도쿄교육대 교수)에 대한 해설이 2쪽에 걸쳐 실렸다.

이에나가 교수는 1963년 일본의 침략전쟁 사실이 포함된 고교 일본사를 집필, 검정 신청했다. 문부성은 이 전쟁을 ‘무모한 전쟁’과 ‘전쟁의 비참한 측면’이란 표현을 삭세 수정할 것을 요구했지만, 그는 이를 거부했다.

“전쟁 중에 한 사람의 사회인이었던 나는 지금 생각하니, 전쟁을 찬미하지 않은 것을 자랑스럽게 여기지만 전쟁을 막지 못한 것에 대해 참회합니다.

지금 전쟁의 싹이 있다면 그것은 반드시 없애야만 합니다. 전쟁으로 우리 세대는 커다란 피해를 입었습니다.

많은 동료들이 죽어갔습니다. 이 막대한 희생을 바탕으로 헌법이 만들어 졌습니다. 평화주의, 민주주의라는 두 기둥은 그들의 숭고한 생명이 남긴 유일한 유산입니다. 이것을 헛되이 해서는 안됩니다.” 1965년 국가를 상대로 한 재판 청구에 앞서 그가 낸 호소문이다.

그는 패소하자 1967, 1984년에 다시 재판을 청구했다. 그를 도운 것은 2만7,000명이 넘는 ‘양심 있는 일본인들’이었다.

일본 법원은 1997년, 32년 만에 난징 대학살, 731부대 생체실험 등을 검정에서 삭제한 것은 위법이라고 판결했다. 그러나 검정 제도 자체는 위헌이 아니라는 판결도 냈다.

3국 공동의 근현대사 교과서의 한국어 판 ‘미래를 여는 역사’는 일본의 교과서 검정 제도의 몰 역사성을 지적했다.

“1982년 검정실사에서는 식민지 지배, 침략전쟁 및 난징 대학살 등 지난날 저지른 일들에 대한 책임을 덮으려 했습니다.”

“1990년대 중반이후 일본 정부는 다시 조선에 대한 식민지 지배와 제2차 세계 대전의 책임 문제 등의 기술을 축소, 삭제하는 방향으로 바꾸기 시작했습니다. 그것이 2001년 역사 교과서 문제로 나타난 것입니다.”

‘미래를 여는 역사’는 결론 내리고 있다. “과거의 가해와 피해의 역사를 정면에서 바라보는 것은 매우 괴로운 일입니다.

싫은 일이나 부끄러운 일에는 눈을 돌리고 싶기도 할 겁니다. 그러나 사실과 마주하지 않고는 미래의 평화를 만들 수 없습니다.

우리들이 과거를 어떻게 기억하는 것이 바람직할지 생각해봅시다.”

한국 공동 교과서를 만드는 데 주력한 일본 교과서 바로잡기 운동본부의 서중석 성균관대 교수 등 5명의 공동대표는 칼 카이저, 일본 ‘21네트’의 다와라 요시후미 사무국장과의 토론을 통해 ‘바람직한 미래’를 논의하기 바란다.

박용배 언론인

입력시간 : 2005-09-13 1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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