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트북을 접으며] 추석 유감


추석 풍경이 해마다 쓸쓸해지고 있다.

민족 대이동이라 일컫는 왁자지껄한 즐거움은 점차 귀찮음으로 변하고 있고, 갈수록 가을 한 복판에 자리한 놀러 다니기 좋은 황금 연휴 정도로 추석은 대접 받고 있다.

올해는 짧은 연휴 탓인지 네티즌의 46%가 고향에 가지 않겠다고 했지만, 그럼에도 해외로, 휴가지로 떠나는 행렬은 여전하다. 명절 연휴 때만 되면 항공기 표가 동나고 휴가지 호텔 방들이 꽉 차는 현상이 올 추석에도 예외는 아니다.

요즘은 제대로 된 차례상 구경하기도 쉽지 않다. 여인네들은 ‘명절 스트레스’ ‘명절 증후군’이라는 신조어까지 만들어내며 목소리를 높인 지 이미 오래다. 자칫하다가는 집안 분란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그렇다고 맞벌이에, 아이들 교육에 ‘사투’를 치르는 오늘날 주부를 생각하면 나무랄 일만도 아니다. 여기에 저출산 현상도 쓸쓸해져 가는 추석에 한 몫을 하고 있다.

여하튼 힘겨운 일상생활에서 벗어나 편안함과 안락함을 얻고, 삶을 재충전하기 위해 온갖 고생을 무릅쓰고 고향을 찾았던 예전의 그 푸근한 풍경들이 점점 사라져 가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미국에도 우리의 추석과 유사한 추수감사절이란 명절이 있다. 2001년 9ㆍ11 테러 이후 첫 추수감사절 풍경이 인상적이었다.

어느 때보다 많은 미국인들이 고향을 찾았다. 평소에는 몰랐던 ‘고향 집에서 가족들과 함께 하는 칠면조 구이를 곁들인 저녁식사’가 얼마나 가치 있는 일인가를 9ㆍ11 이후 비로서 깨달았기 때문이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경제 부흥기에 태어나 물질적 풍요와 개인주의 속에서 성장한 베이비 붐 세대들은 9ㆍ11 테러를 통해 가족의 소중함을 피부로 느끼게 됐다. 테러가 남긴 예상 못한 결과다.

이번 추석이 조상은, 가족은, 그리고 이웃은 우리에게 무엇인지를 다시 한번 생각케 하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 ‘정신적 실향민’만큼 서러운 것은 없다. ‘무늬’만 남아도 추석은 추석인 것이다.


조신 차장


입력시간 : 2005-09-15 12:08


조신 차장 shincho@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