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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장 칼럼] 지역신문 지원의 허실


여기 한 신문이 있다고 가정해 보자. 이 신문은 한 번 제대로 된 언론을 만들어 보겠다는 신념을 지닌 양식 있는 인사에 의해 지방에서 창간됐다.

지역 관련 정책이나 제도의 허점을 비판하고 대안을 제시하며, 주민들을 위한 다양한 생활 정보를 지속적으로 보도해 많은 신뢰를 쌓았다.

그러나 고질적인 경영난으로 회사 운영에 상당한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때 중앙정부에서 적지 않은 자금을 지원해 줘 한숨을 돌릴 수 있게 되었다.

이 경우 신문사가 정부로부터 돈을 받은 것은 정당하다고 할 수 있을까. 또 정부의 입김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을까.

정부가 형편이 어려운 지방신문에 도움을 주겠다며 만든 새로운 제도를 두고 언론계에서 논란이 분분하다.

건전한 지방 언론을 육성해 풀뿌리 민주주의를 굳건히 하겠다는 취지로 제정된 지역신문발전지원법(지역신문법)에 근거한 지역신문기금 지원이 출발부터 삐걱거리고 있다.

지역신문법은 우여곡절 끝에 작년 3월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하지만 예산 미확보 등의 문제로 지원 사업이 지연돼 오다 특례 조항을 통해 올들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그러나 학계 등을 중심으로 언론사에 대한 정부 지원의 부작용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확산되고 있다. 정부를 견제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 언론인데 정부로부터 돈을 받을 경우 그런 역할을 제대로 할 수 있겠느냐는 것이다.

또한 지금과 같은 지방신문 업계 상황을 고려할 때 정부 지원은 더더욱 적절치 못하다는 지적이다. 현재 지방신문은 난립 상태다.

좁은 시장에 경영이 어렵다는 것을 알면서도 너도나도 달려들어 직할시 규모에 일간 신문이 10개가 넘는 경우도 있다.

이처럼 지방 토호 등이 경쟁적으로 신문사 만들기에 나서고 있는 상황에서 정부가 끼어 들어 국민 혈세를 얹어 주는 것은 있을 수 없다는 얘기다.

지원 대상 신문사 선정을 둘러싼 마찰과 잡음은 더욱 가관이다. 심사 선정 작업을 맡은 지역신문발전위원회는 당초 지난 8월 일간지 18개사와 주간지 37개사를 선정했었다.

그러나 번복과 재심의 과정을 거치면서 일간지 중 13개사가 탈락해 5개사로 최종 확정되었다. 게다가 지역 분포도 특정 지역에 편중되었다. 그러자 여러 곳에서 반발과 항의가 쏟아져 들어왔다.

우선 문화관광부에서 지역별 균형이 안 이루어졌다며 재심의를 요구했다. 이에 대해 이번엔 전국언론노조 등 언론단체가 발끈했다.

지역 안배 요구엔 정치적 의도가 개입됐으며 이에 따른 나눠먹기식 선정은 안 된다고 정동채 문광부 장관을 압박했다.

이와 함께 지역발전위원회 위원 전원의 교체도 주장했다. 선정에서 탈락한 신문사들의 반발도 거셌다.

이들은 심사 기준이 모호하며, 정부가 지원을 빌미로 언론 길들이기에 나선다면 단호히 대처하겠다고 강조했다.

지역발전위를 재구성해 재심의를 해야 한다고도 주장했다. 이 와중에 위원장과 일부 위원이 사퇴하는 소동도 벌어졌다. 서로 얽히고 설킨 이전투구인 셈이다.

사태가 이렇게 된 원인은 뻔하다. 250억원의 거액을 지원하면서 어설프게 접근했기 때문이다. 이 같은 사태를 예측 못한 채 관련법을 만들고 이를 시행한 정치권과 정부에게 모든 책임이 있다고 봐야 한다.

지금과 같은 방식으로 지원을 계속한다면 분란은 매년 반복될 것이다. 이를 막기 위해서는 이 제도를 당장 없애는 것이 마땅하다.

아니면 시행 방식을 근본적으로 바꿔야 한다. 정부가 직접 나서서 지원하는 것을 중단해야 한다. 정부가 민영 신문사에 나라 예산을 지원하는 것은 선진국에서는 보기 어려운 현상이다.

언론재단 같은 기존 유관 단체에 기금을 넘겨 운영토록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리고 지원도 회사별이 아니라 프로젝트별로 선정 실시해야 분쟁을 줄일 수 있다.

한 마디로 정부가 나서서 건전한 신문을 키우겠다는 발상을 버려야 한다. 훌륭한 신문은 스스로의 노력과 독자들의 선택으로 만들어지는 것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신문사는 기본적으로 사기업이다. 전파라고 하는 국민 소유의 재산을 쓰는 방송과는 완전히 다르다.

따라서 신문은 원칙적으로 시장 기능에 맡겨야 한다. 정부의 개입을 최소화 해야 하는 것이다.

결국 지역신문기금 논란은 지방 신문을 도와주겠다고 나선 정부가 오히려 신문사간 돈 싸움 양상만 만들어 놓은 꼴이 되었다.

이제부터라도 좀더 신중하고 세련된 언론 정책을 마련, 시행하는 것이 필요하다.


김양배 부국장 ybkim@hk.co.kr


입력시간 : 2005-10-05 1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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