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장 칼럼] 대북 정책 어디로 가나


북한 문제와 관련 최근 국내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련의 사태를 보고 있노라면 과연 우리는 지금 어디로 가고 있나 하는 생각이 든다.

착잡하기도 하고 우려의 마음이 생기기도 한다. 6ㆍ25전쟁 이후 지금처럼 남한에서 북한의 정치, 사상적 입장을 옹호하고 미국을 깎아 내리려는 시도가 숨가쁠 정도로 줄지어 일어난 적이 없기 때문이다.

북한 정권이나 반미친북(反美親北) 세력은 속으로 쾌재를 부르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마저 든다. 민족 화해를 바탕으로 통일로 가기 위해서는 이 정도쯤이야 대범하게 받아 들여야 한다고 스스로 타일러 보아도, 이건 아닌데 하는 마음이 자꾸 고개를 쳐든다.

북한의 입장에 동조하고 미국에 비난의 화살을 쏘아대는 일은 올들어 유난히 많이 일어났다. 최근 2~3달 동안에만도 한 손에 꼽을 수 없을 정도다.

우선 지난 7월 강정구 교수가 6ㆍ25는 남북 간의 내전인데 미국이 개입해서 자주적 통일의 기회를 놓쳤다고 주장해 커다란 파문을 일으켰다.

강 교수는 이어 “공산주의를 택했어야 했다” “한ㆍ미 동맹 철폐하고 주한 미군 철수해야 한다”는 등의 주장을 거침 없이 쏟아내 논란을 가중시켰다.

뒤이어 8월말엔 민주노동당 김혜경 대표가 방북, 남한의 현충원 격인 애국열사릉을 참배한 자리에서 방명록에 “당신들의 ‘애국의 마음’을 길이길이 새기겠다”고 서명해 ‘애국’의 의미를 놓고 설전이 벌어지기도 했다.

9월엔 민족 통일을 방해하고, 양민을 학살했다는 이유로 시작된 맥아더 동상 철거 운동이 최고조에 달해 동상 사수파와 충돌, 유혈 사태가 일어났다.

이 사건으로 인해 미국 하원의원들이 맥아더 동상을 철거하려면 미국으로 보내 달라고 요구하는 서한을 당시 뉴욕을 방문 중이던 노무현 대통령에게 전해 또 다른 파장을 낳기도 했다.

이어서 북한이 노동당 창건 60주년(10월10일)을 맞아 마련한 체제 선전 집단 체조인 ‘아리랑’을 보기 위해 수천 명이 방북한 것도 주목된다.

10월 들어서는 사망한 장기수 정순택씨의 시신을 북한으로 송환하고 나머지 생존 장기수도 북으로 보내는 것을 본격 추진해 또 다른 논란을 낳았다.

인도적인 관점에서 장기수를 송환하는 것은 바람직하나 우리는 이와 상응하게 북한에 끌려간 국군 포로와 납북자 송환을 왜 적극 추진하지 못하느냐는 주장이다.

북측의 초청 취소로 무산되긴 했지만 노동당 창건 기념 행사에 남측 민간대표단 파견을 검토한 것도 사회 일각의 우려를 자아냈다.

이 모든 일들이 남북 화해와 평화라는 명분과 일부 미국의 잘못도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사상의 자유가 있는 나라이니 ‘그럴 수도 있다’는 식으로 넘어갈 수도 있다.

그러나 한 국가가 이렇게 정체성도 없이 두루뭉실하게 대처하는 것은 매우 위험하다. 이런 식으로 계속 가다가는 북한에 대한 정신적 무장 해제까지 가는 것이 아닌가 하는 걱정마저 생긴다.

남북관계는 아직 완벽하게 신뢰를 쌓은 상태가 아니다. 특히 경제 협력과 인적 교류 측면에선 나름대로 많은 진전이 있었으나 정치나 사상 측면에선 아직 갈 길이 멀다.

그 동안의 행태로 봐서 북한의 정치 체제나 사상은 변하기가 쉽지 않다. 따라서 현재 우리의 자유민주주의 체제 만큼은 굳건히 지켜야 한다는 신념과 의지를 정부는 강하게 보여 주어야 한다. 술에 술탄 듯, 물에 물탄 듯 하다가는 명분도 실리도 모두 잃을 가능성이 높다.

이런 점에서 앞서 언급한 일련의 사태에 대해 정부의 확고한 자세와 대처가 매우 중요하다. 맥아더 동상 철거 시도나 강정구 교수 발언, 북한 노동당 창건 기념행사 사절단 파견 등에 있어서 우리의 입장을 분명하게 드러내는 것이 필요하다.

지금까지와 같은 어정쩡한 자세로는 더 이상 얻을 것이 아무 것도 없다. 북한과의 경제 및 인적 교류는 활발하게 하되 자유 민주주의라는 정치 이념과 한ㆍ미 동맹의 유지라는 가치는 절대 후퇴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지난 10월3일은 독일 통일 15주년이 되는 날이었다. 독일 통일에 큰 역할을 한 사람 중의 하나인 헬뮤트 콜 전 총리는 자유 민주주의 체제를 바탕으로 한 통일과 나토 회원국 잔류 등을 굳건하게 밀고 나가 독일 국민들의 염원을 이뤄냈다.

우리도 이제 우리의 목소리를 확실하게 내어야 한다. 줏대 없이 이리 끌려 다니고 저리 끌려 다니는 일은 그만 둬야 한다. 협력과 화해는 상대에 대한 저자세 만으로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김양배 부국장


입력시간 : 2005-10-11 14:27


김양배 부국장 ybkim@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