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PEC 정상회의가 있기 전 11월17일 노무현 대통령은 부시 미국 대통령과 함께 경주에서 기자 회견을 했다.

조금 길지만 “한미 두 정상간에 북한 인권문제에 대해서 이견이 있다는 언론보도가 있는데, 노 대통령의 입장은”이라는 질문에 대한 노 대통령의 답변을 청와대 홈페이지에서 옮겨 본다.

“이제 남북 간에는 정치적으로 또 함께 합의해서 이루어내야 될 많은 문제들이 있기 때문에 남북간의 정치적 관계를 고려하지 않을 수 없는 그런 상황도 있다.”

“링컨 대통령이 대통령으로 재임했던 시절에는 끊임없이 노예 해방론자들로부터 인권에 대해서, 노예해방에 대해서 적극적이지 않다고 공격을 받았다. 매우 심하게 공격을 받았다. 실제로 링컨 대통령은 노예해방문제에 대해서 걸음이 느렸다.”

“왜 그랬냐 하면 대통령이 선명한 태도를 취하면서 노예해방에 앞장서버렸을 경우에 여러 주 간의 이해관계 때문에 아메리카가 분열될 수밖에 없는 그와 같은 상황이고 또한 실제로 남북 전쟁까지만 그 쪽에서 노예해방을 하려는 연방주의가 대세를 이루기 어려운 노예해방 때문에 연방주의가 대세를 이루지 못하고 연방이 와해될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그 연방을 지킬 수 있는 주의 동의를 확보해야 되는 이와 같은 관계에 있었다.”

“여기에서 링컨 대통령은 항상 미합중국 연방의 통합을 우선순위에 두고 그 통합을 이루어가면서 점진적으로 노예해방정책을 추진했다. 그래서 결국 남북 전쟁이 끝나기 전에 링컨 대통령은 모든 노예를 해방시키고 그들이 실제로 총을 메고 전쟁에 참여할 수 있는 데까지 갔다. 이와 같은 평가는 링컨 대통령이 돌아가신 11년 만에 프레드릭 더글라스라는 흑인 지도자가 링컨의 업적을 평가한 가운데 제가 말씀 드린 것과 똑 같은 내용이 들어 있다.”

2001년 11월 나온 ‘노무현이 만난 링컨’에는 저자인 노 대통령의 ‘링컨’에 대한 나름의 해석이 있었다.

그러나 지난 10월에 미국에서 나온 도리스 키언스 굳윈의 ‘경쟁자와 팀을 이뤄 – 아브라함 링컨의 정치적 천재성’이란 916쪽짜리 두꺼운 책에는 링컨의 노예해방이 노 대통령의 해석과는 다르다.

굳윈은 1994년에 쓴 ‘보통 때가 아닌 때 – 프랭크린과 엘리노어 루즈벨트: 2차 대전의 국내전선’으로 역사부문 풀리쳐 상을 받은 하버드대학 역사학부 출신이다.

그녀는 링컨의 ‘정치적 천재성’에 대해 그와 1860년 대통령 후보를 다퉜던 4인을 전시내각에 포함시켜 이들 4명으로부터 “나보다 나은 정치가다.

내가 대통령 되었어도 못할 일을 했다”는 말을 들을 정도였다고 설명했다. 특히 뉴욕 주지사였으며 상원의원으로 링컨과 공화당 대통령 지명전 1차 투표에서 1위를 했던 윌리엄 슈어드(1801~1872)는 국무장관을 전쟁기간 4년 여 내내 지내며 링컨 내각의 총리처럼 일했다.

슈어드는 그의 부인이 된 프랜시스의 아버지인 뉴욕주 엘리야 밀러 판사의 후견 아래 변호사, 정치인이 됐다. 프랜시스는 프랭클린 루즈벨트의 부인 밸리도어 만큼 지성적이고 진보적이었으며, 남편의 조언자였다.

노 대통령은 링컨이 흑인노예 해방에 대해 “걸음이 느렸다”고 말했지만, 이에 대한 슈어드의 인식은 전연 다르다.

링컨은 1863년 1월1일 공포한 ‘현재 미합중국에 반란을 일으킨 주 또는 주의 일부에 속한 노예들은 1월1일 이후 영원히 자유의 몸이 될 것이다’는 노예 해방령을 1862년 9월22일 세상에 알렸다.

링컨은 이 해 9월22일 뉴욕 트리뷴 편집인 호레이스 그릴리가 요구한 ‘2,500만의 탄원’에 대한 공개 답변에서 노예 해방에 대한 그의 신념과 그의 정부의 정책을 명백히 했다.

“이 싸움에서 나의 가장 중요한 목적은 북부 연합을 구하는 것이지 노예제도를 옹호하거나 파괴하는 것이 아니다. 노예는 해방하지 않아야 북부 연합을 구할 수 있다면 나는 그렇게 할 것이다.

물론 노예를 해방해야 북부 연합을 구할 수 있다면 나는 그렇게 할 것이다. 이것이 공인으로서 내 목표다. 그러나 내가 늘 말했듯이 모든 이에게 자유를 주는 것이 내 개인적 소망이다. 소망을 버릴 생각은 조금도 없다.”

이런 신념과 소망의 발표를 슈어드는 적어도 정부군이 동부전선 안티탐에서 이길 때까지 보류 하기를 바랐다. 그걸 슈어드는 권고했고 링컨은 이를 받아들인 것이다.

링컨의 공개 편지를 본 프랜시스는 코멘트했다. “그의 편지에는 정의감이 없군요. 인간의 자유보다 기껏 몇 개 주를 연방에 계속 있게 하려 하다니.”

슈어드는 아내에게 말했다. “만약 미 공화국이 전쟁으로 파괴된다면 인종의 구원이 문제가 아니라, 인류의 희망인 미국이 사라지는 것이 문제요. 태양이 사라지는 것을 상상해 보시오. 노예제를 파괴 하는 것보다 나라를 구하는 게 먼저요.”

노무현 대통령은 굳윈의 책을 꼭 구해서 읽어 보기 바란다. ‘노무현이 만난 링컨’을 기획하고 만들어 낸 배기찬 전 청와대 기획비서관을 불러 ‘노무현이 다시 만나본 링컨’을 기획토록 해야 한다.

박용배 언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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