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도 제대로 된 공영방송을 갖고 싶다.”

제 역할을 못하는 공영방송을 바로 잡아 보자며 국민들이 팔을 걷어붙이고 나섰다. 언론학자와 법조인 기업인 등 120여명이 ‘공영방송 발전을 위한 시민연대(공발연)’를 결성, 11월25일 창립 대회를 열었다.

주로 보수 성향으로 분류되는 인사들이 공영방송의 빗나간 행태를 보다 못해 들고 일어선 것이다. 이들은 창립 선언문에서 “KBSㆍMBC 등 공영방송 시사ㆍ보도 프로그램이 특정 정파의 이익을 위해 봉사하고 있다는 비판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라며 “공영방송의 주인인 국민은 공영방송의 현 상태를 더 이상 묵과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공발연은 이에 따라 공영방송의 독립성 유지, 공정성 확보, 다양성과 건전성 제고, 보편성 신장, 경영합리화, 유연성과 책임의식 확립 등을 활동 목표로 내세웠다.

공발연의 출범을 보면서 우리의 공영방송이 어쩌다 이런 시민 운동의 대상까지 되었는지 착잡한 마음을 금할 수 없다. 공영방송 스스로 참으로 부끄러워해야 할 일이다.

현재 공영방송의 가장 큰 문제로 지적되는 것은 공발연의 주장대로 특정 정파 편들기, 구체적으로는 친여, 친정부적 행태다.

권위주의 정권 시절엔 방송이나 신문 할 것 없이 정권의 눈치를 보며 할 말을 제대로 못했다.

그러나 민주화에 따라 언론 자유가 거의 100% 확보되었는데도 공영방송의 정부 편들기 성향은 바뀌질 않고 있다.

공영방송이 이렇게 된 데는 역시 정부의 코드 인사와 이의 굴레를 못 벗어난 최고 경영진의 책임이 크다.

정부가 무슨 수를 써서라도 코드에 맞는 인물을 최고 경영진에 앉히는 것이 근본 문제라 하더라도 최고 경영자 자신이 책임을 면할 순 없다.

이 같은 구조적 틀을 깨지 못하는 한 공영방송의 편파성 논란은 계속될 수밖에 없다.

공영방송의 두번째 문제는 프로그램 제작에서 공영방송답지 못한 사안이 자주 발생한다는 것이다.

패륜적이거나 선정적인 드라마 장면과 생방송 도중의 성기 노출 사고, 제작비를 둘러싼 PD의 자살 기도 사건 등 최근 자고 나면 문제가 터져 나와 시청자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하고 있다.

이는 그만큼 내부 기강이 해이해져 조직 통제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는 반증이다. 국민의 소유인 전파와 세금(시청료)으로 운영되는 공영방송이 이런 식의 물의를 반복적으로 저지른다는 것은 국민의 입장에선 용납할 수 없는 일이다.

세번째는 경영부진을 타개하는 방식이 공영방송에 걸맞지 않다는 것이다. 공영방송이라면 국민에 부담을 지우기 보다는 경영 혁신과 뼈를 깎는 내부 구조조정으로 어려움을 돌파해 나가야 하는데 최근의 행태를 보면 전혀 그렇지 않다.

많은 사람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방송위로부터 낮 방송 허가를 받아낸 것이 대표적이다. 여기에다 중간광고와 가상 광고 허용, PPL(간접광고) 규제 완화까지 이루어질 것으로 보여 시청자 불편은 아랑곳 하지 않고 재정 확대에만 신경을 쓴다는 비난을 자초하고 있다.

KBS의 경우엔 시청료의 대폭 인상도 끈질기게 추진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이렇다 할 자체 구조조정 노력은 보이질 않는다. 이렇게까지 된 데는 관리ㆍ감독의 역할을 제대로 못한 방송위의 책임도 크다는 분석이다.

세계 최고의 공영방송으로 일컬어지는 영국의 BBC나 일본의 NHK의 경우를 살펴보면 우리의 공영방송이 얼마나 안일하게 행동하는가를 확연히 알 수 있다.

BBC와 NHK는 얼마 전 약속이나 한 듯 10%가 넘는 직원을 감원하고 제작 비용 절감 등 대폭적인 예산 삭감 계획을 발표했다. 회사의 어려움을 시청자에게 전가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강도 높은 구조조정으로 BBC를 재건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 그레그 다이크 전 사장은 작년 방한 회견에서 “공영방송은 정부나 특정 정당의 대변인이 돼선 안 되며, 정치세력이 제기한 이슈를 최대한 공정하고 정직하게 보도해야 한다”고 강조한 바 있다.

다이크 전 사장은 영국 정부의 이라크전 명분이었던 대량살상무기 정보의 조작 가능성 보도 논란과 관련 작년 1월 사장직을 사임했다. 다이크 전 사장은 자리를 물러서면서까지 BBC의 공영성과 신뢰를 지킨 셈이다. 이는 우리의 방송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정권이 바뀌어도 정치적 독립성과 공정성을 꿋꿋이 지키고, 건전한 프로그램과 경영 혁신을 통해 국민의 신뢰를 받는 진정한 공영방송을 우리는 언제쯤 보게 될지 자못 궁금하다.


김양배 부국장 ybkim@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