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발장. 프랑스 문호 빅토르 위고의 소설 ‘레미제라블’의 주인공이다. 장발장은 배고픔을 견디다 못해 빵 한 조각을 훔치다 붙잡혀 감옥에 갇히게 된다.

여러 번 탈옥을 시도하다 실패한 후 19년의 옥살이를 하고 가석방으로 풀려난다. 이후 한 신부의 따뜻한 마음에 감동해 착한 사람이 되기를 결심하고 헌신과 봉사의 삶을 살아가다 생을 마감한다.

소설 속의 이야기이긴 하지만 장발장과 관련 끝없이 논쟁의 대상이 되는 문제가 있다. 빵 한 조각을 훔친 혐의로 19년간의 감옥 생활을 한 것이 합당한가 하는 것이다.

당장 먹고 살 것이 없는 긴급 상황 하에서 생계 유지를 위해 저지른 범죄임을 감안할 때 너무 가혹하다는 의견이 있는가 하면, 빵을 훔쳤다는 것 자체도 문제지만 여러 번 탈옥을 시도했기 때문에 그 정도의 형기는 당연하다는 지적도 있다.

두 의견이 모두 나름대로 타당성이 있어 어느 것이 옳고 어느 것이 그르다고 단호하게 결론을 내리기는 쉽지 않다.

느닷없이 장발장 얘기를 끄집어 낸 것은 참여정부 들어 대선자금 등 비리 사건으로 옥살이를 했던 전 국회의원을 비롯한 유명 정치인 10여명이 최근 ‘장발장회’라는 친목 모임을 만들었다는 소식 때문이다.

이 모임의 회장은 정대철 전 열린우리당 고문이고, 김운용 전 국제올림픽위원회(IOC) 부위원장이 명예회장에 추대됐다. 총무는 3번 구속됐다가 모두 무죄 판결을 받고 풀려난 박주선 전 민주당 의원이 맡았다고 한다.

이밖에 최돈웅ㆍ신경식ㆍ박상규 전 한나라당 의원, 이훈평 전 민주당 의원, 박지원 전 청와대 비서실장, 이연택 전 대한체육회장 등이 회원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름만 들어도 누구인지 금세 알 수 있는, 한동안 이 나라를 호령하던 인사들이다.

이들 정치인들은 비리 사건으로 감옥에 갔다 풀려 나온 것이 마치 장발장이 겪은 고난과 흡사하다고 생각해 모임 이름을 ‘장발장회’라고 정한 것으로 보인다.

다시 말하면 스스로를 장발장으로 여긴다는 얘기일 것이다. 그러나 장발장회라는 이름에서 즉각 받는 느낌은 “그럴 듯한데”보다는 “그게 아닌데”다.

장발장은 비록 빵 한 조각을 훔친 잘못을 저지르고 오랜 수형 생활을 했으나 감옥을 나와서는 마음을 고쳐 잡아 선하고 착한 행동으로 어려운 사람들을 적극 도와준 인간애와 정의감이 큰 인물이다.

또한 사회 변혁을 꿈꾸는 청년들에게 힘을 보태 주기도 했다. 현실적으로 장발장회 회원들과는 거리가 있는 행적인 것이다.

회원들은 자신들의 비리를 뉘우치고 반성하기 보다는 억울하고 부당하다는 쪽에 마음을 두는 것으로 비쳐진다. 마치 장발장이 겨우 빵 한 조각만을 훔쳤는데 부당하게 19년이라는 가혹한 형을 살았다는 주장과 일맥상통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들이 저지른 부패 행위는 결코 빵 한 조각을 훔친 장발장의 잘못과는 비교가 안 될 만큼 크다고 할 수 있다. 사회에 미치는 악영향이 매우 심대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장발장이 불가피한 생계형 범죄로 긴 옥살이를 한 것이 합당하냐는 물음과 동일한 방향에서 자기 변명적 논쟁에 기대려는 생각은 위험하다고 할 수 있다.

그런 논쟁이 쉽게 벌어지지도 않겠지만 벌어진다 해도 이에 동조하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일부 인사는 억울한 사연이 있을 수 있고 일부는 결백하다는 판결을 받기도 했다. 하지만 부패 비리를 저지른 사람들이 스스로 생계형 범죄를 저지른 장발장과 동일시하는 것은 결코 정당한 것으로 평가할 수 없다.

이런 점에서 볼 때 장발장회 회원들이 진정으로 이름에 걸맞는 회원이 되기 위해서는 앞으로 좀더 떳떳하고 인간다운 행동을 통해 사회 발전에 기여하는 노력을 보여 주어야 할 필요가 있다.

빅토르 위고는 인도주의 사상과 자유 정신에 투철한 작가였다. 그는 비참하고 어려운 사람, 현실의 여러 악조건에 시달리는 사람들을 위해 글을 썼고, 그들과 함께 울고 웃고 동정했다.

그들의 편에 서서 불의와 싸우기도 했다. 장발장은 빅토르 위고의 이 같은 철학과 신념을 바탕으로 탄생했다. 그러니 부패 비리에 연루된 정치인들에게는 어울리지 않는 인물상이다.

일부에선 “자중해야 할 시기에 경솔한 행동을 한다”는 비판도 있지만 ‘장발장회’라는 이름부터 바꾸는 것이 순리하고 생각된다.

‘참사모(참회하는 사람들의 모임)’나 ‘반정모(반성을 통한 정치 발전을 추구하는 사람들의 모임)’ 등이 어떨까.


김양배 부국장 ybkim@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