좀 특이한 책이다. 청와대 제 1부속실 소속 국정기록 비서관으로 일하던 이진이 12월11일에 낸 ‘참여정부, 절반의 비망록 – 노무현, 왜 그러는 걸까’가 그렇다.

동아일보 송영언 논설위원은 느낌을 썼다. ‘비망록이란 잊어버릴 때를 대비해 틈틈이 적어 두는 기록’인데 아직도 집권 중인 대통령 비망록을 내는 것은 ‘좀 그렇다’는 것이다.

“하지만 책 전체를 관통하는 줄거리는 상식과 양심에 따라 행동하고 탈 권위에 앞장선 노 대통령의 인간적 모습이다. 또 하나의 ‘현실 정치용 대통령 찬가’라는 느낌을 지우기 어렵다.… 이번비망록은 나오기 전에 대통령과 비서진이 먼저 읽어봤다니 애초부터 홍보문인 셈이다.”

비망록을 남긴 주인공 노무현 대통령은 원고를 보고 이진 전 비서관에게 말했다. “필자의 판단과 책임에 달린 문제다. 그 이상 대통령과 청와대 중심의 관점에서 구속을 두려고 하는 것은 옳지 않다.”

저자인 이진은 이 말을 “노 대통령은 자신의 ‘객관성과 공정성’ 수준에 미치지 못한다는 느낌을 받았던 듯했다. ‘이진씨의 눈에 비친 노무현 세계라는 한계를 넘을 수 없는 것 같다’고 느낀 것 같다”고 받아들였다.

그래서인지 노 대통령은 1,400매 원고의 군데군데 자신의 의견을 달았다.

2003년 5월18일, 대통령이 되어 처음 찾은 광주 망월동 묘역입구를 한총련 학생들이 “한ㆍ미 공동성명 철회하라(노 대통령과 부시의 5월14일 위싱턴에서의 성명). 미국의 간섭 무시하고 공동선언 이행하라. 부시의 대북정책을 반대하라”고 외쳤다.

노 대통령은 앞자리 수행비서에게 명령했다. “뒷문으로 들어가자고 하게. 그리고 학생들 다치지 않도록 과잉 진압하지 말라고 하게.”

이 사태 이후 느꼈던 단상(斷想)을 노 대통령은 이진에게 적어 주었다.

“나는 지금까지 한총련의 주장과 행동에 대해 지적한 적도, 동의한 적도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주장을 내버려두는 것은 내 마음에 안 들어도 이것이 민주주의 사회이기 때문이다. 과거에는 권력이 시민들에게 말할 기회를 주지 않았기 때문에 돌과 화염병을 던졌다. 이젠 어떤 발언도 합법적 틀 안에서 한다면 내버려 두는 것이다. 5ㆍ18 묘역 참배를 가는데 왜 길을 막는가. 그곳이 어떤 곳인가. 공권력과 시민의 싸움이 5ㆍ18 앞에서 불거져야 하겠는가. 내가 보낸 화환은 왜 짓밟는가.”

노 대통령이 쓴 13개 의견 중 제일 길다.

이진 전 비서관이 적은 여러 일화 속에는 노 대통령과 상대방간에 미묘한 생각의 차이가 잘 드러나 있다.

2003년 10월25일 정국은 대선자금 수사로 들끓었다. 4당대표 회동이 있었다. “우리가 지금 국민에게 할 수 있는 것은 우리에게 일말의 양심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것은 제도 개혁입니다.”

노 대통령은 그때 제안한 재신임의 이유가 일말의 양심이 있는 정치인의 신뢰성을 회복해 보겠다는 뜻으로 말한 것이었다.

이에 대한 최병렬 한나라당 대표의 발언은 “탄핵할 일이 있으면 탄핵하고 하야할 일이 있으면 하야해야 합니다”였다.

노 대통령이 허허 웃으며 답했다. “탄핵이니 하야니 그런 말 좀 그만 하십시오.”

이런 일화도 있다. 2004년 1월13일 새해를 맞아 김영삼 전 대통령의 참석없이 전직 대통령 부부 만찬이 있었다.

전두환 전 대통령이 화제를 잡았고 이야기가 너무 튀자 이순자 여사가 “좀 잡수시면서 말씀하세요”라며 제동을 걸었다.

회동이 막바지에 이르자 김대중 전 대통령이 전 전 대통령에게 물었다. “아내와 싸움 안 하는 비결이 있으십니까?” “아 그거요, 옛날에는 권력이 있었으니까 괜찮았는데 요새는 시비 걸면 추워도 밖으로 나가버립니다.”

김 전 대통령이 웃으며 답했다. “우리는 한 사람이 말을 하면 다른 사람이 말을 한 합니다. 저는 마루에 나가서 보기 싫은 신문도 보고 그래요.”

노 대통령이 답했다. “이리 재미있는 줄 알았으면 진작 모셨을 텐데 말입니다.”

이진 기록비서관은 2002년 12월19일 대통령 당선에서 2004년 5월 헌재의 탄핵안 부결까지 15개 항목에 걸쳐 썼다.

“노무현 왜 그러는 걸까”하고 궁금해 하는 노사모들의 물음에 누군가 답해주어야 한다고 느겼고 그녀에게 기회가 온 것이다.

그녀는 노 대통령이라는 ‘섬’과 국민이라는 ‘육지’를 잇는 다리의 역할을 스스로 맡았다.

그녀가 본 노 대통령에 대한 평가를 독자에게 맡겼다. 앞서 든 두 가지 일화 외에도 노무현을 사랑하든 싫어하든 노무현을 알고 싶은, ‘우리 대통령’을 알고 싶은 국민들에게는 그 기록이 재임 중에 써졌더라도 큰 도움이 될 것이다.

특히 대선 후보를 지망하는 이들. 탄핵 정국으로 인해 은퇴한 최병렬, 조순형 민주당 대표는 이 책을 읽었으면 좋겠다. 정몽준 국민통합21 대표도 읽었으면 좋겠다.

2002년 12월17일 선거 전날. 노 후보는 평창동 정 후보 집에서 문전박대를 받았다. 그가 이진 기록관에게 써준 비망(메모랜덤)이다.

“거역할 수 없는 운명이 나를 여기까지 이끌고 있다. 나는 운명이 이끄는 대로 나아갈 것이다.”

앞으로 남은 임기의 노무현 대통령을 ‘밖에서 본 노무현의 절반’으로, 속편으로 써주길 바란다.


박용배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