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웅이란 말은 언제나 우리의 마음을 설레게 한다. 난세이건 호시절이건 영웅이라고 불리는 사람이 나타나면 모두가 열광하고 환호한다.

그 호칭이 다소 과장되고 각색이 되었더라도 그에 대한 찬사와 기대는 하늘을 찌른다. 영웅은 시대와 분야를 가리지 않고 명멸한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역사상 수많은 영웅이 탄생했다. 정치 경제 문화 스포츠 환경 자선 등 분야별로도 끊임없이 생겨났다가 사라지기를 반복한다.

영웅은 시대와 사회가 요구하는 능력을 특출하게 갖추고 적절히 사용해 두각을 나타내는 사람을 일컫는다. 한 마디로 남들보다 뛰어난 사람이다.

그러나 진정한 영웅이 되기 위해선 조건이 있다. 첫 번째가 진실성이다. 아무리 훌륭한 업적을 이루었더라도 그 업적이 거짓이거나 바르지 못한 방법으로 얻어진 것이면 영웅이 될 수 없다.

두 번째는 합리성이다. 남들보다 뛰어난 힘을 가졌더라도 이를 잘못 쓰면 영웅이 되기 어렵다. 자신에게 주어진 능력이 무엇이든 간에 이를 자신 뿐 아니라 다른 사람에게도 적절히 아낌 없이 쓰는 이가 진정한 영웅이다.

황우석 박사도 불과 두 달 전까지만 해도 과학계의 영웅이었다. 복제소와 복제개를 탄생시키고, 체세포 복제 배아 줄기세포와 환자 맞춤형 배아 줄기세포를 만드는데 성공했다고 세계를 상대로 잇달아 발표하면서 한국 생명과학의 미래를 짊어질 보배로 대접 받았다.

그러나 난자 채취 과정에서의 윤리 문제에 이어, 2005년 사이언스 발표 논문이 조작되고 맞춤형 줄기세포가 하나도 없었던 것으로 밝혀지면서 황 박사는 회복하기 어려운 깊은 나락으로 빠져 드는 모습이다.

거칠 것이 없을 것 같았던 영웅의 자리에서 거짓말을 일삼은 부도덕한 과학자로 하루 아침에 급전직하한 것이다.

황 박사는 아직도 할 말이 남아 있는 것 같지만 학자로서의 신뢰를 회복하기란 쉽지 않아 보인다. 참으로 안타깝고 불행한 일이다.

그러나 황 박사의 침몰로 우리의 생명과학계가 더 이상 위축되거나 주춤거려서는 안 된다는 것이 과학계와 일반 국민들의 생각이다.

생명과학은 오랫동안 고통을 겪고 있는 난치병 환자들의 희망이자 미래 국가를 먹여 살릴 중요한 성장 동력이기 때문이다.

황 박사를 대신할 제2, 제3의 영웅이 나와야 한다는 것이다.

이번에는 거짓으로 포장된 영웅이 아닌, 진실하고 정직한 영웅이어야 한다는 것은 두 말할 필요도 없다. 그러기 위해서는 몇 가지 신경을 써야 할 점이 있다.

우선 산학협동이든 정부 차원이든 주요 연구 과제에 대한 지원을 지속적이며 적극적으로 해 주되 연구의 자율성을 침해하지 않는 범위 안에서 사후 관리와 검증을 철저히 할 수 있는 제도를 만드는 것이다.

이와 함께 지원 기관이 단기적 성과에만 집착하지 말고 긴 호흡으로 연구를 독려할 수 있는 체제도 수립해야 한다.

그래야만이 실적에 대한 압박감에서 벗어나 안정된 분위기에서 연구에 전념함으로써 내실 있는 결실을 맺을 수 있다

둘째는 폐쇄적이고 경직된 연구시스템의 개선이다. 연구 최고 책임자와 일선 연구원 간의 의사소통이 자유롭지 못하고 윗사람의 지시나 명령은 아무런 이의 제기 없이 무조건 따를 수 밖에 없는 풍토에선 언제든지 왜곡과 조작이 일어날 가능성이 존재한다.

연구의 자율성을 확대하고 연구원간의 커뮤니케이션을 활성화 할 수 있는 방안을 찾아 이를 적극 시행하는 것이 시급하다.

셋째는 과학에 대한 국민들의 변함 없는 관심이다. 과학기술은 국가 발전의 요체다. 치열한 글로벌 경쟁에서 살아 남기 위해선 과학기술의 육성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이를 위해선 정부의 정책적 지원이 가장 핵심적인 요소이긴 하나 국민들이 좀더 많은 애정과 관심을 가지고 이 분야에 종사하는 사람들을 성원하고 격려하는 것이 매우 필요하다.

황우석 사태는 이제 원천 기술의 유무 여부 판정과 검찰의 수사 등을 남긴 채 학문적으로는 마무리 단계에 들어선 것으로 판단된다. 과학계는 이번 파문으로 엄청난 혼란과 고통을 겪었다.

그러나 이를 교훈 삼아 더 높이 더 멀리 도약해야 한다. 그래서 새로운 영웅을 탄생시켜야 한다.

다만 서두르지 않고 차근차근 업적을 쌓아 나가며, 독선적이거나 부도덕하지 않고 겸손한 자세로 남에게 공을 돌릴 줄 아는 진정한 영웅을 국민들은 바라고 있다.


김양배 부국장 ybkim@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