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새해 덕담이 되었으면 좋겠다.

노무현 대통령은 설날(1월29일) 전에 지난해 12월 ‘역사를 아는 힘’이란 역사에세이를 낸 한림대 한림과학원 교수 한영우 박사(1937년생ㆍ전 서울대 인문대학장)와 “왜 새삼스럽게 정도전인가”라는 대담을 했으면 좋겠다.

기록에는 ‘참여정부 절반의 비망록 – 노무현, 왜 그러는 걸까’를 낸 전 청와대 국정기록 비서관 이진이 맡으면 좋겠다.

노 대통령은 지난해 12월27일 전직 대통령 비서실장, 수석보좌관들을 부부동반으로 초청, 저녁식사를 하며 역사를 화두로 삼아 이야기를 시작했다.

“우리 역사에서 한 사람의 뜻이 제일 오랫동안 시대를 지배한 사람이 누구냐.”

“뜻으로 보자면 그건 정도전이다. 조선시대 하면 세종이나 정조를 떠올리지만 사실은 법령 등 전도전이 만든 기틀 위에서 세종과 정조가 뜻을 펼친 것 아니냐.”

“왕권 대 신권(臣權) 중 정도전은 신권정치를 주장했고 이는 세종과 정조 때 꽃을 피웠다.”

노 대통령은 최근에 정도전에 대한 책을 열독했다고 했다.

이 자리에서 김우식 전 실장(1월2일 과학기술부 부총리 내정)은 “노 대통령에 비판적이었던 모 교수가 ‘다른 건 몰라도 노 대통령의 정치개혁은 후세에 높은 평가를 받을 것같다’고 하더라”고 전했다.

노 대통령은 이어 28일 청와대 기자단과 가진 송년 만찬회에서 역사 이야기를 또 화두로 삼았다.

“저도 대통령을 하면서 이런저런 갈등이 많은데 무엇보다 역사란 무엇인가, 자문케 된다.”

“‘영웅이 시대를 만든다’고들 하지만 아닌 것 같다. 조선시대의 대표적 영웅으로 여겨지는 세종과 정조는 시대의 흐름을 바꾸지 못한 반면 조선의 개국공신 정도전은 불교에서 유교 성리학으로 변화를 이끌고 시대의 흐름을 크게 바꿨다”고 했다.

노 대통령이 ‘갈등의 해결사’로 ‘역사 속 영웅’으로 화두 삼은 정도전에 대해 책을 쓴 사람은 누구일까. 노 대통령에 비판적이었다는 모 교수는 누구일까.

1973년 서울대 사학과 교수로 있으면서 ‘정도전 사상연구’, 83년 ‘개정판 정도전 사상연구’, 99년 ‘왕조의 설계사 정도전’을 쓴 한영우 박사가 거의 틀림 없을 것 같다.

특히, 1997년 이후 시평과 사평(史評)을 모아 이번에 낸 그의 네 번째 역사에세이를 내고 조선일보 12월3일자에 나온 인터뷰 기사는 보기에 따라 비판적이다.

“어떤 사람은 노무현 대통령이 정조를 닮았다는데 내가 보기엔 꼭 광해군입니다. 광해군은 조선의 대표적인 개혁 군주였고 취지도 좋았지만, 너무 성급했어요. 그래서 실패한 겁니다.”

“광해군 정권의 지지 세력이었던 북인들은 반대파의 정신적 스승인 이황과 이언적을 배격하고 자기 스승인 조식과 서경덕을 문묘에 모시려는 ‘과거사 청산’ 작업을 하다가 실패했습니다.

지식인들을 설득하고 동의를 구한 다음에 조식과 서경덕을 높였다면 반정(反正)으로 끝나지는 않았을 겁니다.”

역사학은 ‘과거와 현재’의 대화라는 데 동의한다는 한 박사는 노무현 정부의 오늘에 충고했다. “피해자를 양산하는 개혁은 실패합니다. 한국의 보수도 현재의 결과를 만들기 위해 애쓴 사람들인데 이 점을 간과하면 억울한 사람이 많지 않겠어요?”

한 박사는 이 인터뷰에서 정도전 이야기는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오늘의 참여정부가 610여년 전 태조 정부(1392~1398) 때보다 보수, 진보의 갈등이 더 심하다고 느끼지 않았기 때문일지 모른다. 영웅이 태어날 때가 아니기 때문일지 모른다.

한 박사는 ‘역사를 아는 힘’에서 ‘왜 정도전을 연구했는가’를 적었다.

1967년 서울대학교 문리대 조교가 되어 왕조실록을 뒤지면서 놀라움을 느꼈다.

“실록을 토대로 논문(사회경제사분야)을 쓰면서 심각한 갈등에 빠졌다. 조선왕조는 양반을 옹호하는 봉건국가로서 백성을 억압하는 정책을 썼으리라는 것이 실록을 읽기 전 선입관이었고 그것을 증명하기 위해 연구를 시작한 것이다. 그러나 실록은 놀랍게도 정반대의 정보를 담고 있었다.”

“나는 이론과 현실(실록에 나타난) 사이에서 심각한 갈등과 번민을 거친 끝에 조선왕조를 전면적으로 다시 연구하기로 작심하였다. 우선, 왕조의 건국이념부터 알아보기 위해 삼봉 정도전 사상 연구에 매달렸다. 그 결실이 ‘정도전 사상연구(1973)’로 나왔다. 사대주의자요 양반옹호주의자로 알려진 정도전은 뜻밖에도 주체성이 강한 민본주의자였고 조선왕조를 설계한 최고의 두뇌였다는 것을 알게 된 나는 흥분을 가눌 길이 없었다. 유신 직전 박정희 대통령의 인권탄압과 강권정치에 절망을 품고 있던 시절에 정도전을 만난 것은 마치 구세주를 보는 것과 같은 위안을 얻었다.”

1999년 10월 발행, 2004년 10월 10쇄에 들어간 ‘정도전 사상연구’를 쉽게 풀이한 ‘왕조의 설계자 정도전(383쪽)’ 중 정도전의 사상적 지위라는 마지막 장에 그는 적었다.

“난세가 영웅을 만든다는 말이 있다. 흔히 선비라면 조용한 학자를 떠올리지만, 정도전은 당시로서 최고 학부인 성균관 교관 출신의 학자이면서도 연약한 선비가 아니었다. 한 손에는 붓을 들고 다른 한 손에는 칼을 쥐고 있었다고 스스로 자부하는 영웅호걸형의 선비였다. 그의 붓은 문명개혁의 좌표를 세웠고, 그의 칼은 썩은 왕조를 도려냈다. 난세가 그를 그렇게 만든 것이다.”

한영우 박사와 노무현 대통령은 21세기 한국에 ‘난세의 영웅’이 나오지 않도록 “왜 새삼 정도전인가”의 대담을 꼭 하길 바란다.


박용배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