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새해 덕담이 되었으면 좋겠다. 연초부터 ‘이념적 유연성’에 시달리는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는 이 책을 꼭 읽어보기 바란다.

또 박 대표를 따르는 평론가나 언론출신 의원은 ‘대통령 후보 박근혜’라는 책을 냈으면 한다.

읽어야 할 그 책은 ‘칸즈러진(여성총리를 의미하는 독일어) 앙겔라 메르켈 – 통일 독일의 선택 최초의 여성 총리(2005년 12월20일 번역출간)’다.

본대학 게르트 랑구트 정치학 교수가, 동독에서 물리학 박사 학위를 취득한 여성으로서 통일 독일 이후 처음으로 총리가 된 메르켈에 대해 지난해 10월에 쓴 평전이다.

메르켈 총리가 독일 기독민주당의 대변인, 연방의원으로 있을 때 그녀를 도왔던 랑구트 교수가 140여 명에 이르는 메르켈의 지인들을 만나 인터뷰한 것에 정치평론가로서 자신의 분석을 덧붙인 책이다.

이 책이 읽히길 바라는 것은 여지껏 나온 박 대표에 대한 평전 5~6종(주치호의 ‘박근혜 신드롬’ 등)의 이미지와 그의 요즘 정치 활동이 너무 동떨어져 있기 때문이다.

특히 한나라당의 소장파 리더인 원희룡(재선의원) 최고위원이 지난해 12월30일 ‘한겨레21’과 가진 인터뷰를 둘러싸고 박 대표가 발끈한 것은 꼭 이 책을 읽어 보아야 하는 당위성을 생각케 한다.

원 최고위원은 “박 대표는 국가 경영을 꿈꾸는 사람인데 왜 그렇게 벼랑 끝으로 몰고 가는지 모두가 궁금해 한다”며 이에 대해 답했다.

“실제 이렇다. 박 대표는 현상, 현안을 이해하는데 이념 문제가 관련되면 몇 단계식 점프한다. 이념 문제에 대해 극단적이고 일방적인 사명감을 갖고 있다. 자기 체험에서 나오는 이념 폭이 너무 좁다. 지난해 국가보안법 대폭 개정 내지는 대체입법을 얘기했더니 갑자기 ‘그러면 국군은 왜 있어야 하지요’라고 말해 포복절도하게 한 게 대표적이다. 이번에도 ‘우리 아이를 붉은 이념으로 물들이는데 이게 왜 이념 공세냐’며 소장파들을 일일이 반박하고 배심원들을 세워놓고 완전히 작살낸 것 아니냐. 이건 병이라고 생각한다. 이념은 체계적으로 강화된 편견에 불과하다. 지금은 전세계가 이념을 넘어 삶의 질, 국가 경쟁력 향상을 위해 다양한 방법을 벤치마킹하고 축적하는 시대지, 자신의 선험적 이념 틀에 묶어놓고 현안을 재단하는 시대가 아니다. 더욱이 중도 이념도 아니고 당신들이 국가 정체성을 해치고 있다고 한다. 타협하면 자신이 반역자가 되니 결국 적대적 투쟁밖에 없다.”

이에 대해 박 대표는 새해 1월5일 발끈했다. 원 최고위원이 회의에 참석하기 전이었지만 목소리를 높였다.

“도를 넘었다. 원 의원은 그동안 열린우리당 생각을 대변하더니, 존경심을 바라지 않지만 막말을 하지 말아야 한다. ‘이념병’이라니… 이런 인신 공격이 어디 있느냐.”

이날 회의는 원 의원이 “일부 표현에 대해 사과는 했지만 승복이 아니라 논쟁이 있었다”는 브리핑으로 끝났다.

그러나 이념 문제의 질문이 지난 10일 광주 김대중컨벤션센터에서 열린 한나라당 인재영입위원회에 출석한 박 대표에게 또 쏟아졌다.

류한호 광주대 언론홍보대학원장은 말했다. “한나라당은 호남의 보수주의자들마저 용납하기 어려울 정도로 이념적 유연성이 부족하다.”

“박근혜 대표의 5ㆍ18 묘역 방문이나 연말 폭설 피해 현장 봉사 등의 노력으로 호남에서의 한나라당 지지율이 1%대에서 5~10%대까지 올라선 게 사실이다. 그러나 한나라당은 아직 이데올로기적으로 지나치게 우경화돼 있다.”

“최병렬 전 대표는 4ㆍ15 총선 전에 호남에 비례대표 세 명을 배정하겠다고 해놓고 약속을 지켰다. 호남 민심을 달래기 위해선 당내 호남 출신 인사들에 대한 파격적인 처우개선이 필요하다.”

박 대표는 답했다. “한나라당이 너무 한쪽으로 치우치는 것에 대해 염려하는 말씀 잘 들었다. 그러나 간첩을 민주화 인사라 하고 6ㆍ25때 적화통일 됐어야 한다는 사람을 그냥 놔두면 나라 체제가 흔들릴 것이란 걱정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야당이 나선 것이다. 정당이 여론을 의식해야 하지만, 때로는 사학법처럼 도저히 이건 아니다 싶으면 어떤 희생이 있어도 갈 길을 가는 게 정당인의 태도다.”

이런 박 대표를 두 살 아래인 통일 독일 최초의 여성총리인 앙겔라 메르켈과 비교해 보면 ‘여성’이라는 점 외에 우리가 알지 못하는 차이가 많다고 느낄 지 모른다. 그러나 ‘정치에 참여한’, ‘정당의 대표’ 정치인이란 공통점은 동ㆍ서가 다른 게 아닌 것 같다.

서독 함부르크에서 태어나 1954년 동 베를린으로 목사를 자원해 넘어간 목사의 딸인 메르켈. 1989년 12월 베를린 장벽이 무너졌을 때 동독 과학아카데미 연구원이었던 그녀는 ‘민주개혁’이란 정당에 들어가 2005년에는 기민당의 당수로 연정대권을 잡았다.

메르켈은 2005년 2월 총선을 앞두고 “독일하면 어떤 생각이 떠오르십니까”하는 물음에 답했다.

“촘촘한 창이 떠올라요. 독일처럼 촘촘하고 아름다운 창을 만드는 나라는 없을 것입니다. 독일 향토 음식도 생각나고 너도 밤나무와 떡갈나무 같은 활엽수, 두루미, 황새 같은 새들도 떠오르네요.”

그녀의 평전을 쓴 랑구트는 결론 내렸다. “현재의 메르켈 삶은 구 동독 체제와 깊이 얽혀있는 그녀의 아버지로부터의 정치적 해방이다. 그러나 메르켈은 여전히 아버지에게 자신을 증명해 보이기 위해 열심히 노력하고 있다.”

박근혜 대표는 꼭 ‘앙켈라 메르켈’를 읽기 바란다.


박용배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