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촌 정치권에 거센 女風

세계 정계가 여풍(女風)에 놀라고 있다.

15일(현지시간) 치러진 칠레 대통령 선거에서 칠레 역사상 첫 여성 대통령으로 당선된 미첼레 바첼레트(54)와 같은 날 핀란드 대통령 선거에서 재선이 확실시된 타르야 할로넨(63) 대통령이 거센 ‘여풍’의 주인공들이다.

또 지난해 아프리카 최초의 여성 대통령으로 당선돼 16일 취임한 라이베리아의 엘런 존슨 설리프(67) 대통령도 이들과 어깨를 나란히 한다.

이로써 올해에만 아메리카와 유럽, 아프리카 세 대륙에서 여성 대통령이 잇따라 집권하며 남성 위주의 정치문화에 신선한 충격을 주고 있다.

현직에 있는 여성 대통령과 총리로는 이밖에 아일랜드의 메리 매컬리스(55) 대통령과 지난해 독일 역사상 첫 여성 총리가 된 앙겔라 메르켈(52), 뉴질랜드의 헬렌 클라크(56) 총리, 필리핀의 글로리아 마카파갈 아로요(58) 대통령 등이 있다.

북아메리카를 제외한 5개 대륙 7개 나라에서 여성이 최고 권좌를 차지한 셈이다. 세계 각국에서 여성의 정계 진출이 제2차 세계대전 이후에 본격화했다는 점을 감안하면 최근 정치권의 여성 돌풍은 놀랍다.

여권신장이 두드러진 유럽과 달리, 제3세계에서의 여성 정치인들은 깨끗한 이미지를 무기로 부패한 남성정치에 신물이 난 유권자들의 높은 지지를 받고 있다.

칠레 바첼레트 대통령 당선자는 이혼 경력을 가진 미혼모이자 좌파 출신의 무신론자이다.

엘런 존슨 설리프 라이베리아 대통령

칠레는 가톨릭신자 비율이 89%에 달해 남미에서 가장 보수적인 나라라는 점을 고려하면 그의 당선은 여러 사회적 장벽을 뛰어넘은 혁명적 사건이라고 할 수 있다.

바첼레트 당선자는 최고 권좌에 오르기까지 숱한 역경을 헤쳐 왔다. 그는 1970년 칠레대학 의학부에 입학한 뒤 사회당에 입당해 비밀 조직원으로 활동하다 73년 아우구스트 피노체트 군사정권이 들어서면서 투옥되기도 했다.

아버지는 공군 장성으로 당시 고문으로 사망했고 그는 어머니와 함께 호주, 독일로 망명생활을 하다 5년 만에 조국 땅을 밟았다.

이후 정치적 꿈을 접지 않은 그는 비밀 사회당원 활동을 계속하고 피노체트 독재 희생자들의 자녀를 돌보면서 정치적 기반을 닦았다. 사회당 정권이 들어서자 보건장관과 국방장관을 지냈다.

아프리카 라이베리아 설리프 대통령 역시 ‘철의 여인’으로 통한다. 미국 하버드대학을 졸업하고 세계은행과 유엔에서 일하다 70년대 후반 라이베리아 재무장관이 됐으나, 그의 정치 여정은 고난의 연속이었다.

80년대 쿠데타 정권을 반대하다 옥고를 치렀고, 97년에는 대선에 패배한 뒤 반역죄로 몰려 망명 길에 올라야 했다. 그러나 ‘오뚝이’ 같은 의지로 아프리카 첫 여성 대통령이 됐다.

세계 정계의 ‘여풍’이 과연 2008년 미국 대선에서도 이어질 수 있을지 관심이 쏠려있다. 힐러리 클린턴 상원의원(민주)과 콘돌리사 라이스 국무장관(공화)이 첫 여성 대통령 후보로 나설 가능성이 점쳐지고 있는 상황이다.

여하튼 중남미의 ‘좌풍(左風)’과 함께 ‘여풍’은 올해 세계 정치권을 관통하는 키워드가 됐다.


조신 차장 shincho@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