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신과 사랑으로 '영웅'을 키워냈다

지난 6일(한국시간) 미국 디트로이트 포드필드에서 벌어진 제40회 슈퍼볼.

4쿼터 승부를 결정짓는 터치다운을 찍는 등 맹활약한 하인스 워드(30ㆍ피츠버그 스틸러스)가 슈퍼볼 최우수 선수(MVP)의 영예를 안는 모습을 어머니 김영희(55)씨는 조용히 TV로 지켜봤다.

“그냥 좋았지. 뭐…”라고 담담하게 그 때 소감을 말하는 김씨는 다음날도 어김없이 오전 7시에 일어나 동네 고등학교 구내식당에 출근, 평소와 다름없는 일상을 보냈다. 달라진 것이라곤 쉴 새 없이 걸려오는 전화들뿐.

한국계 미국 프로풋볼 영웅 워드를 소개하면서 항상 빠지지 않는 인물은 워드를 키워낸 어머니 김영희씨다.

지금도 어머니 얘기만 나오면 눈시울을 붉히는 워드는 "엄마는 나를 위해 뼈 빠지도록 일했고 거기서 성실, 정직, 사랑 등 모든 가치를 배웠다"며 "나는 뭘 하더라도 어머니가 베푼 은혜를 다 갚을 수 없다"고 털어놓는다.

워드는 9일 출연한 미국 3대 공중파 방송 중 하나인 ABC 생방송 아침 프로 `레지스 앤드 켈리'에서도 "어머니는 나의 인생과 함께 한 사람(Going through with my life)"이라고 또 한번 강조했다.

이어 "어머니는 먼 한국에서 이곳 미국으로 와서, 정부 지원도 받지 못하고 가족도 없이 모든 어려움을 극복하고 나를 키웠다"고 눈물을 글썽거렸다.

역경과 고난을 딛고 훌륭하게 아들을 길러낸 전형적인 한국 어머니 김씨. 워드의 말마따나 진정한 MVP인 김씨는 서울에서 주한미군이던 아프리카계 미국인 아버지 하인스 워드 시니어와 결혼, 1976년 3월8일 워드를 낳았다.

하지만 그가 맞닥뜨린 것은 차가운 시선과 냉대 뿐. `흑인과 결혼했다'는 집안의 비난을 피해 미국에 건너왔지만 곧 남편과 헤어졌다.

영어를 못해 직업이 변변찮았던 탓에 워드의 양육권도 전 남편에게 빼앗겼지만 어린 아들이 눈에 밟혀 한국으로 돌아오지도 못했다.

김씨는 애틋한 모정을 잊지 못하고 2학년 때 아버지 집에서 도망쳐온 워드를 조지아대에 진학할 때까지 돌봤다.

시간당 4달러25센트 정도를 받는 접시닦이, 호텔 청소부, 식료품 가게 점원 등 하루 세 가지 일을 하면서도 워드가 끼니를 거르지 않고 깨끗한 옷을 입으며 운동하도록 정성을 다했다.

잠도 거의 안 자고 종일 일하면서도 끼니 때마다 워드에게 밥을 차려주려고 일터에서 집으로 왔다 가곤 했다.

김씨는 엄하면서도 헌신적인 `한국형 현모'의 전형이다. `공부하라', '늘 겸손하라'고 끊임없이 채찍질했고 그 결과 워드는 체육특기자임에도 학업에서도 우등생이었다.

하지만 김씨는 지금 “다 아들이 잘한 때문”이라고 공을 아들에게 돌린다.

“따져 보면 다 그 애가 해나가는 거지, 내가 하는게 있나. 차(벤츠)도 그렇고, 집도 그렇고…” 힘들고 외로웠을 외아들 뒷바리지의 고생은 하나도 기억하지 않으려하는 듯하다.

“워드가 어릴 적에 잘못하면 때리기도 하며 일부러 엄하게 길렀다”고 말하는 김씨는 “그래야 세상 무서운 줄 알고 겸손해질 것 아니냐”며 힘들었던 당시를 회고한다.

“인생에는 언제나 오르막과 내리막이 있는 법이야, 올라갈 때 조심해야지.” MVP에 오른 이후 행여 자만에라도 빠질까 앞날을 챙겨보는 김씨의 말에는 여전히 변함없는 사랑과 현명함이 배어 있다.

김씨는 30년 동안 한국을 한 번도 방문하지 못한 아들과 함께 조만간 한국을 찾을 예정이다.


박원식 기자 parky@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