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한나라당 대표는 2월13일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 회의에서 말했다. “정부는 국민한테 의심을 받을 짓을 하면 안된다. 김대중 전 대통령의 방북도 하필이면 5·31지방선거를 앞두고 이뤄진다면 많은 사람들의 의심을 받을 일이다.”

이규택 최고위원은 이날 김 전 대통령의 4월 하순 방북에 대해 희화적으로 비유했다.

“영화 ‘왕의 남자’를 보면 연산군이 광대들을 궁에 끌어들여 옳은 말을 하는 중신들을 죽인다. 이것(DJ방북)은 한마디로 정부가 김 전 대통령을 끌어들여 지방선거 승리를 위한 ‘광대놀이’를 하는 것이다”

같은 당 고진화 의원은 박 대표, 이 최고위원과는 다른 의견을 냈다.

“김 전 대통령의 방북은 그가 평생동안 실천해온 3단계 통일론을 제도화하기 위한 큰 걸음이자 강대국 중심으로 재편되고 있는 동북아 질서에 능동적인 주도력을 행사하겠다는 국제적인 의미가 있다”며 “고령에 신장투석까지 받고 있으면서도 노구의 몸을 던지는 그의 모습에서 민족통일을 위해 몸바친 김구, 장준하 선생의 그림자가 느껴지기도 한다”고 말했다.

DJ측은 '좋은 계절'을 '꽃 피는 좋은 계절'로
해석했으며 그래서 지난달 말
"방북시기는 4월 하순으로 생각하고 있다"고
정부를 통해 북측에 의사를 전달했다

DJ의 재방북은 그가 청와대를 나온 이후에도 서울을 방문한 북측 인사들과의 면담에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구두 초청을 잇달아 받자 추진된 것이다.

김 위원장은 지난해 6월15일 방북한 정동영 당시 통일부 장관에게 “김대중 전 대통령을 좋은 계절에 초청하겠다”고 했다. 이어 8·15 민족대축전에 참가하기 남한에 온 김기남 노동당 비서는 8월17일 DJ가 입원한 연세세브란스 병원을 찾아가 김 위원장의 구두 초청의사를 다시 한번 전했다. “좋은 계절에 오시라고 했는데 지금도 유효하다”고 했다.

DJ측은 ‘좋은 계절’을 ‘꽃 피는 좋은 계절’로 해석했으며 그래서 지난달 말 “방북시기는 4월 하순으로 생각하고 있다”고 정부를 통해 북측에 의사를 전달했다.

DJ의 한 측근은 방북 시점이 김일성 주석의 탄생을 기리는 ‘4·15 태양절’ 이후라고 말했다.

지방선거를 노린 여권의 북풍설에 대해선 “남북한에는 서로 기피하는 기념일이 많다. 그래서 북한의 ‘태양절’ 정치일정을 피해 방북 시기를 4월 하순으로 정했다. 지방선거를 끝내고 6월에 간다면 북한의 ‘조국해방전쟁(6·25) 전승기념일이 끼여있어 이번엔 북에 정치적으로 이용당한다는 말이 나오지 않겠는가”고 반문했다.

또 김대중 전 대통령 비서실 최경환 비서관은 14일 현재의 상황을 알렸다.

“모든 연락은 정부를 통해 이뤄지고 있을 뿐이고 일부 언론 보도처럼 다른 창구는 없다. 어제 당정 협의에서 정부측은 2월16일 김정일 생일이 지나야 북측의 회신이 올 것 같다고 이야기했다. 현재 우리가 알고 있는 것이 거기까지다.”

‘북풍, 태양절 방북’이란 정치적 소용돌이에 몰린 DJ방북에 대한 의문을 풀어줄 책이 미국에서 나왔다. 상하이, 홍콩에서 중국계 미국인 변호사로 일하는 고든 창이 지난달 10일 펴낸 ‘핵 대결-북한은 세계를 노린다’이 그것이다.

1999년 ‘다가오는 중국의 붕괴’를 쓴 그는 10여 년 째 홍콩, 상하이에 머물며 중국, 북한, 세계 문제에 대해 뉴욕타임스(NYT), 월스트리트저널(WSJ) 파이낸셜 이코노믹 저널 등에 기고해왔다.

창은 “오늘의 북한이 핵폭탄이 될 수 있는 무기를 가지게 된 것은 김일성·정일 부자의, 세계 특히 미국을 향해 현 국가체제와 세습왕조적 지위를 영구히 보장받기 위해 ‘제도적인 위기’를 조성하려는 의도가 깔려있다”고 주장한다.

인터넷, 칼럼, 유명 신문과 방송의 기사, 인터뷰 등을 조사해 그는 면밀하게 북한과 중국을 분석했고 서울, 베이징도 여러 차례 방문했다.

그는 오늘의 김 위원장이 가지고 있는 북한 핵문제의 근원은 아버지 김일성에서 비롯된 것으로 파악한다.

한국전쟁이 끝나자 김일성은 56년 당시 소련의 핵에 대해 연구하기 위해 많은 인원을 파견했다. 60년에는 영변에 핵 실험용 원자로를 세웠다. 64년 중국이 핵폭탄을 만들자 마오 쩌뚱에게 제조 설계도 등을 공유하자고 두 차례나 간청했다. 72년 남북회담 때는 남북이 함께 핵무기 보유에 나서자고 제의하기도 한 것으로 알려졌다.

91~94년 조지 부시에서 클린턴 대통령에 이르기까지 고조되는 ‘핵풍’ 속에 김일성은 미국, 일본, 세계를 상대할 수 있는 비장의 카드는 오직 ‘북한의 핵 보유’뿐이다는 신념을 종교처럼 가졌다.

북한의 그런 신념은 김일성이 김영삼 전 대통령과의 남북정상회담을 눈앞에 두고 94년 7월 사망한 이후에도 끝나지 않았다. 미국과의 ‘핵풍’은 한국, 중국, 일본, 러시아 등과의 6자회담으로 계속되고 있다.

6자회담의 주도자는 미국의 부시, 중국의 후진타오, 일본의 고이즈미, 러시아의 푸틴, 한국의 노무현 대통령으로 바뀌었지만 김정일 위원장은 10년이 넘게 혼자 상대하고 있다.

고든 창은 이런 김 위원장을 지탱해주는 버팀목은 중국과 한국의 6자회담에서의 협력이라고 보고 있다.

그는 미국에 북한이 핵무기를 만들려고 할 때, 혹은 이미 보유하고 있을 때 문제를 삼아야지 강경과 협상 사이를 계속 오락가락하면 북한은 결국 세계에 재앙을 가져다줄 핵무기를 갖게 될 것이라고 충고한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꼭 이 책을 읽고 평양에 갔으면 좋겠다.


박용배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