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수 추기경은 한국천주교의 축복"

“부족한 내가 추기경으로 선택받은 것은 내 자신이 잘났기 때문이 아니라 대한민국과 한국 천주교가 세계에서 차지하는 위상이 크게 작용한 것입니다” 한국의 두 번째 추기경이 된 한국천주교 서울대교구장 정진석(74) 대주교는 “복수 추기경에 서임된 것은 한국의 자랑”이라고 겸손부터 보였다.

교황 베네딕토 16세는 정진석 대주교를 추기경으로 임명했다고 로마 교황청이 22일 공식 발표했다.

1969년 교황 바오로 6세에 의해 동양인으로서는 다섯 번째, 한국인으로는 처음으로 서임된 김수환 추기경에 이어 한국교회사에서 거둔 37년 만의 축복이다.

1931년 12월 서울에서 태어난 정진석 추기경은 중앙고와 서울대 공대를 졸업했다. 원래 공학도였지만 뜻한 바가 있어 다시 가톨릭대 신학부에 입학한 정 추기경은 사제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61년 사제 서품을 받은 뒤 중림동본당 보좌신부와 성신고 부교장, 천주교중앙협의회 총무 등을 거쳐 70년 39세로 국내 최연소 주교로 수품됐다.

청주교구 교구장, 주교회의 의장 등을 역임한 정 추기경은 현재 천주교 청주교구재단 이사장과 주교회의 교회법위원회 위원장, 서울대교구 교구장과 평양교구 교구장 서리, 가톨릭학원 이사장 등으로 있다. 또 아시아특별 주교시노드(주교회의) 상설사무처 평의회 위원도 맡고 있다.

정 추기경은 교회 내에서는 교회법의 대가로 통한다. 88년 '전국 공용 교구사제 특별 권한 해설'(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을 낸 것을 시작으로 총 22권의 교회법 관련 저서를 출간했다.

또 사회복지단체 꽃동네를 오웅진 신부가 설립하는 데도 큰 도움을 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정 추기경은 ‘옴니부스(Omnibus: 모든 이에) 옴니아(Omnia: 모든 것이)’를 좌우명으로 삼아 왔다. 라틴어인 옴니부스 옴니아는 ‘모든 이에 내가 가진 것을 다 내놓겠다’는 헌신의 자세를 의미한다.

교황청이 정 대주교를 추기경으로 승품한 이유는 한국에서 가장 크고 상징적인 서울대교구장을 맡고 있는 데다 평양교구장을 함께 맡고 있기 때문인 것으로 알려졌다.

교황청은 만주나 중국, 북한, 러시아 등 공산권 국가를 선교하는데 한국 천주교가 중요한 역할을 맡아줄 것을 기대하고 있다. 옛 서독 출신의 교황 베네딕토 16세도 분단국가와 공산권 국가 선교에 많은 관심을 가져왔다.

무엇보다 한국이 복수의 추기경을 두게 됐다는 것은 세계교회에서 한국 천주교의 위상이 그만큼 높아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추기경은 교황을 직접 보필하면서 전세계 12억 명에 달하는 가톨릭 신자들을 직접 통치하는 자리이기 때문이다.

80세 이하인 한국인 현직 교구장이 추기경으로 서품됐다는 의미도 크다. 지난해 교황 요한바오로 2세의 서거 후 열린 콘클라베(교황 선출을 위한 추기경단 비밀회의)에 한국은 단 한 명도 파견하지 못해 아쉬움을 남겼다.

김수환 추기경이 당시 83세로 교황 선거권이 없었기 때문이다. 추기경의 교황 선거권과 피선거권은 80세 미만의 추기경으로 제한된다.

따라서 정진석 추기경은 콘클라베에 참석할 수 있고, 또한 선거권과 피선거권도 갖는다.

'주님탄생 예고 대축일'(성모영보 대축일)인 3월 25일 로마 교황청 성 베드로광장에서 열리는 공개 추기경회의에서 공식 서임될 예정인 정 추기경은 “교회 뿐 아니라 나라 전체의 발전을 위해 노력하겠다”고 국민들의 적극적인 지원을 당부했다.


박원식 차장 parky@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