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댁 셋째 아들놈이 그 고생해서 사들인 논이며 밭을 사기 도박단에 걸려 탕진하고 이혼까지 당하게 됐대.”

“○○댁 큰 아들은 참외농사 크게 지어 목돈 챙겼다는 소문이 있더니만 지난 겨울 성인오락실 도박에 빠져 수천만원을 날리고 이제는 빚쟁이 신세라고 하더라.”

농촌에 뿌리를 둔 도시민들에게 가끔씩 날아드는 안타까운 고향 소식들이다.

농한기 농촌에서의 도박은 그동안 상당히 줄어들었다고는 하지만 도박으로 낭패를 당했다는 소문이 끊이지 않는다. 도박으로 날린 농어민들의 재산이 얼마나 피땀을 흘려 모은 것인가를 생각하면 애틋함이 더 하다.

지난 1월 남도 여행 중에 우연히 만난 진도군의 한 50대 양식업자는 돈벌이는 도시민들과 비교해도 부럽지 않은데 겨울철 촌구석에선 마땅히 놀 게 없는 게 고역이라고 했다.

그리고선 화투장 잡는 시늉을 하며 요즘 노름재미에 푹 빠졌다며 토로했다. 같이 어울릴 동년배도, 여가거리도 없다 보니 화투장 잡는 게 그나마 낙이라는 것이다.

길 위에서 흘려들은 이야기이지만 ‘노름판에 잃은 사람은 있어도 딴 사람은 없다’는 도박판 생리를 생각하면 뒤늦게 터져 나올 마음씨 좋은 촌부의 한숨이 걱정스러울 뿐이다.

그러나 당국이나 농민단체들의 인식은 입소문으로 떠도는 농촌지역의 도박 폐해 심각성과는 사뭇 거리가 있다.

한 지방 경찰청 관계자는 농촌 도박 실태를 묻는 기자에게 “먹고 살기도 바쁜 요즘 농촌에 도박을 할 수 있겠느냐”고 되물었다. 농민 운동가들 역시 마찬가지. 쌀 개방 탓에 온통 난리인데 한가하게 무슨 도박 타령이냐는 반응이다.

농촌 지역의 노름이란 것이 워낙 관행으로 뿌리내려 친목과 도박을 구분 짓기가 애매하고, 또 무리하게 단속했다가는 되레 원성만 사는 경우도 종종 있다. 그래서 경찰이나 농민단체들의 소극적인 태도는 일면 이해된다.

하지만 지금 군소도시와 농촌 지역에 성인오락실만 4,100여 곳이 성업 중이고 지난해 단속된 도박 건수만 2,800여 건에 이른다는 사실은 농촌 도박 현실을 허투루 보아 넘길 상황이 아니다.

경찰은 노름이 개인뿐만 아니라 농촌 전체의 삶을 황폐화시킬 수 있다는 위기감을 갖고 계도와 단속에 적극 나서야 한다. 또 농민단체나 지자체는 농한기에 농민들이 의미있게 겨울을 보낼 수 있는 현실적인 대안 마련에 머리를 맞대야 한다.

독버섯처럼 퍼지는 농촌도박 폐해의 근절은 쌀 개방ㆍ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반대 등 거대 현안만큼이나 절박하다.

단(斷)도박. 농촌의 ‘조용한 생활 혁명’을 기대해 본다.


조신 차장 shincho@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