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의 관광 특구 이태원. 세계 각국에서 온 외국인들이 낮에는 쇼핑을, 밤에는 여흥을 즐기는 인종의 용광로다. 과거 이곳의 단골고객은 주한 미군이었지만 지금은 지구촌의 축소판이라고 할 만큼 다양한 인종과 민족을 볼 수 있다.

그렇다면 한국어를 빼고 이태원에서 가장 널리 쓰이는 언어는 뭘까. 정답은 두 말할 나위 없는 영어(English)다. 하지만 오늘날 국제 공용어로 쓰이는 미국식 영어는 아니고 오히려 글로비쉬(Globish)에 가깝다.

글로비쉬는 IBM 유럽지사에서 40개국 출신의 동료들과 근무한 경험을 가진 프랑스인 장 폴 네리에르가 주창한 ‘지구촌 영어’다. 기초적인 영어 지식을 가졌다면 비 영어권 사람들끼리 아주 쉬운 영어로 의사소통을 할 수 있다는 발상에서 나온 것이다.

서울의 비즈니스 중심가인 광화문.다국적 기업의 임직원이나 외국 공관원 등 엘리트 외국인들이 많이 모이는 곳이다.

그런데 이 일대의 음식점이나 커피숍에서는 이태원의 글로비쉬를 좀체 들을 수 없다. 외국인뿐 아니라 그들과 함께 한 한국인들도 영어를 썩 유창하게 구사한다.

속속들이 알 수는 없는 노릇이지만 그들 중 상당수는 이해관계로 묶인 만남임을 쉽게 짐작할 수 있다. 그것이 거래상의 파트너십이든 국가간의 외교이든 간에. 분명한 것은 이들의 수준 높은 영어가 글로벌 시대의 강자와 약자를 가르는 기준이 되고 있다는 점이다. 오죽하면 잉글리쉬 디바이드(English Divide)라는 말이 나왔을까.

영어를 잘한다고 사람까지 잘난 건 아니다. 마찬가지로 영어를 못한다고 사람이 못난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지구촌을 묶어주는 영어가 한편으로는 계급 분화를 낳는 모습이 씁쓸하기만 하다.

5월부터 달라지는 토플과 토익 시험이 실용 영어 구사 능력 향상에 도움을 주겠지만 그로 인해 영어교육의 빈부차를 더 벌리지 않을까 하는 걱정도 커진다.


김윤현 기자 unyon@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