①여당 당의장으로 패권을 거머쥔 정동영 의장은 거대 야당인 한나라당과 힘을 겨루어야 하는 절대절명의 숙명 앞에 놓이게 됐다. 야당과 강하게 부딪쳐야 하는 운명을 부여받은 것이다.

②“사느냐! 죽느냐! 이것이 문제로다” 같은 절대절명의 상황일 때야 어찌할 수 없지만 ‘소유냐! 향유냐!’의 선택은 온전히 마음먹기에 달려 있다.

위 신문 기사에서 쓰인 ‘절대절명’이란 무엇일까. 국어사전에서는 이 말을 ‘절체절명(絶體絶命)’의 잘못으로 처리하고, ‘절체절명’을 “몸도 목숨도 다 되었다는 뜻으로, 어찌할 수 없는 궁박한 경우를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라고 풀이하였다.

사람들이 ‘절대절명’이라고 흔히 말하는 까닭은 아마도 ‘절대(絶對)’라는 말에 이끌렸기 때문일 것이다. 이제 ‘절체절명’으로 쓰인 예를 방송에서 찾아보자.

③현장 인물(인터뷰): 사다리차 작동이 원활하지 않기 때문에 저희가 그런 (여러 곳에서 같은 장비를 가져와) 노후된 장비를 믿을 수 없는 데다가 장비를 교체할 예산도 없다는 것입니다.

앵커: 하지만 절체절명의 화재 현장에서 고장난 119의 출동은 시민들의 믿음에 씻을 수 없는 불안감을 남겼습니다.

④2라운드 진출의 최대 고비였던 대만전. 9회 말 절체절명의 위기에서 박진만은 그림 같은 수비로 승리를 결정지었습니다.

‘절체절명’은 일본어 한자 읽기 사전에서 ぜったいぜつめい(젯타이제쓰메이)로 보이고 “도저히 면할 길 없는 어려운 처지”라고 풀이하였다.

우리가 이런 상황을 나타낼 때에는 다소 어려운 ‘절체절명’보다는 ‘피할 수 없음’, ‘절박함’, ‘긴박함’ 같은 말로 바꿔 써도 괜찮다고 본다.

예컨대 ①은 ‘피할 수 없는’으로, ②는 ‘절박한’으로, ③과 ④는 ‘긴박한’으로 바꿔 쓰면 좀 더 쉽고도 편하게 알 수 있을 것이다.


김희진 국립국어원 국어진흥부장 hijin@mct.g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