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퍼볼 MVP' 하인스 워드, 어머니와 함께 방한

“어릴 땐 한국인으로 태어난 게 부끄러운 적이 있었지만 지금은 자랑스럽다.”
“뿌리를 찾아 기쁘다”

미국 ‘슈퍼볼 MVP’ 하인스 워드(30)가 29년 만에 ‘영웅’이 되어 고국 땅을 밟았다.

방한 나흘째인 6일 오후 워드는 서울 종로구 이화여대 동대문병원을 찾았다. 워드의 탯줄을 자른 출생 장소다.

정장차림으로 어머니 김영희(59)씨와 함께 병원에 도착한 워드는 병원 원장실에서 출생 당시 주치의였던 유한기(66) 박사를 만나 이야기를 나눴다.

유 박사가 “워드가 태어날 당시 3.81kg으로 덩치가 큰 반면 산모는 체구가 작아 밤늦게까지 제왕절개 수술을 하는 등 어려움이 많았다”며 출산 당시의 상황을 설명하자, 워드와 어머니는 “생명의 은인을 만나 정말 기쁘다”고 말한 뒤 함께 분만실을 둘러봤다.

병원측은 이날 30년 전 출생기록 카드를 워드 모자에게 전달했다. ‘76년 3월 8일생’. 낯익은 숫자가 눈에 들어오자 워드는 끝내 눈시울을 붉혔다. 한국에서 태어난 한국인이라는 증명서. 그 한 장을 받기 위해 29년을 기다렸던 것이다. 힘들었던 지나온 세월이 생각나던지 어머니의 눈에도 눈물이 글썽거렸다.

워드는 이날 오전에는 경복궁과 창덕궁, 비원을 어머니 손을 잡고 둘러봤다. 평소 어머니가 가보고 싶어했던 곳이다. 홀가분한 마음만큼 복장도 가벼웠다. 청바지와 운동화 차림의 모자는 조선시대 화려한 궁의 모습에 매료된 듯 “이쁘다! 웅장하다!”는 감탄사를 연발했다.

“경복궁과 창덕궁 모두 참으로 아름답습니다. 이런 궁전이 도심 안에 있다는 것이 놀랍고 또 기쁩니다. 한국의 전통을 많이 배울 수 있는 좋은 기회였습니다.”

아들에게 한국의 뿌리를 느끼게 해주고 싶었던 어머니도 “아들과 함께 이곳을 오다니 정말 행복하다”며 환하게 웃었다.

‘영웅’ 워드의 이러한 뿌리 찾기는 단일민족으로서 혼혈을 경시해왔던 한국 사회에 적지 않은 생각거리를 던지고 있다. 소수자로서 숨죽이고 살아왔던 혼혈인들에게 워드는 희망의 메신저다.

5일 워드는 서울 신림동 펄벅 재단 사무실을 찾아 이곳에서 혼혈아 안아름(7), 배유진(4)양 과 두 어머니, 국내에서 프로 농구선수로 활동 중인 장예은(19·우리은행)양을 만나 희망의 메시지를 전달했다.

이 자리에서 아름이 엄마 안진희(30), 유진이 엄마 배선주(45)씨를 만난 워드의 어머니는 아무런 말도 없이 눈물만 흘렸다. 혼혈의 상흔이 그토록 가슴에 사무쳤던 것일까. 20여 분이나 지난 후에야 어머니는 비로소 “한국 사람 안 쳐다보고, 생각 안하며 살아온 30년이었다”고 말 문을 열었다.

“내가 한국으로 돌아 왔었다면 워드는 거지밖에 안 됐을 것입니다. 힘들 때 아무도 도와주는 사람이 없더니, 이제 워드가 유명해져 관심을 많이 가져주니 부담스럽기도 합니다.”

워드 어머니의 말처럼, 미국에서 일군 워드의 성공은 그동안 한국 사회가 보여준 부끄러운 자화상을 들추어 낸다.

통계청에 의하면 지난해 농어촌 지역에서 결혼한 사람들 중 30% 이상이 외국에서 신부를 맞았다. 2020년엔 신생아 3명 중 1명이 혼혈아일 것이란 추정도 나오고 있다. 그러나 ‘세계화’를 부르짖는 우리는 아직도 순혈주의에 집착하고 있다.

6일 정부는 “4월 말 혼혈인 등 소수인종에 대한 사회통합 대책을 논의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워드 열풍으로 고조된 혼혈인에 대한 관심이 일시적 유행에 그치지 않도록 하는 것이 이번 워드 방문의 참된 의미가 아닐까.


배현정 기자 hjbae@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