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희진 국립국어원 국어진흥부장
달맞이꽃 속에 서서 흔들리다 돌아보시게
돌아서는 텅 빈 가슴으로
바람 한 줄기 서늘히 다가와 몸을 감거든
어찌하여 이 물이 그토록 오랜 세월
무심히 흘러오고 흘러갔는지 알게 될지니
아무것에도 걸림이 없는 마음을 무심이라 하나니
욕심 다 버린 뒤
우주처럼 넓어진 마음 무심이라 하나니
다 비워 고요히 깊어지는 마음을 무심이라 하나니
― 도종환의 '무심천' 중에서 ―

청주의 무심천변(無心川邊)에서 소녀 시절을 보낸 서울대 음대의 신수정 학장.

1956년 모차르트 탄생 200주년에 모차르트 피아노 협주곡 제20번으로 서울시립교향악단과 협연하여 등단했던 소녀가 2006년 모차르트 탄생 250주년에 학장 신분으로 4월 9일 세종문화회관에서 같은 곡, 같은 교향악단과 다시 만났다.

악보가 귀하던 시절 아버지에게서 받은 것이 모차르트 피아노 협주곡 제20번이었는데 이후 기회 있을 적마다 “맑고도 슬픈 느낌을 주는” 이 곡을 즐겨 연주했다고 한다.

한 일간지 기자는 이 곡이 신 학장의 ‘18번’이라고 하였다. ‘십팔번’이란 말은 일본의 대중 연극 ‘가부키’(歌舞伎, かぶき)에서 비롯한다. 가부키는 여러 장(場)으로 구성되는바, 장이 바뀔 때마다 막간극을 공연한다.

17세기에 배우인 이치카와 단주로가 가문(家門) 전래의 가부키 막간극 중 성공한 열여덟 가지 기예(技藝)를 정리한 것을 ‘광언(狂言, 재미있는 희극) 십팔번(十八番)’이라 불렀는데 그중 열여덟 번째가 가장 인기 있어 지금처럼 ‘십팔번’이란 말을 하게 됐다고 한다.

왠지 자주 연주하고 싶어지는 곡에 ‘십팔번’은 격에 맞지 않는다. 노래라면 ‘애창곡’ ‘단골노래’, 장기(長技)라면 ‘단골장기’라고 할 수 있겠으나 악기 연주곡은 좀 더 깊은 맛이 나는 말을 찾아봐야겠다. 이 곡을 들으며 아름다운 무심천 옆 둑을 거닐어 보면 어떨까.


김희진 국립국어원 국어진흥부장 hijin@mct.go.k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