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희진 국립국어원 국어진흥부장
여자와 바가지는 내돌리면 깨진다.
여자 팔자는 뒤웅박 팔자다.
여자와 옷은 새것이 좋다.
여자는 사흘에 한 번은 맞아야 사람이 된다.
암탉이 울면 집안이 망한다.
남자가 버는 것은 황소 걸음이고 여자가 버는 것은 거북 걸음이다.
담 너머 꽃이 더 곱다.
고목이 되면 오던 새도 안 온다.
계집과 음식은 훔쳐 먹는 것이 별미다.

여성이 등장하는 속담에 관해서 여러 학자가 연구한 바 있거니와 전혜영 교수 등은 여성을 인격체로 보기보다는 위의 예처럼 사물(私物), 동물(動物), 식물, 음식물 등으로 빗대어 표현했다고 하였다. 그런데 이 속담들이 지금도 가당하긴 한 걸까.

한명숙 의원이 4월 19일 헌정사상 첫 여성 총리가 되었다. 한 총리는 출근 첫날 노무현 대통령에게서 임명장을 받은 데 이어 오후에는 정부 중앙청사에서 취임식을 치르고 공식 업무를 시작했다.

한 총리는 취임사에서 이해와 소통, 부드러움과 강인함이 조화를 이룬 지도력으로 국민의 평안과 행복을 위해 일하겠다고 밝혔다. 이어 "민생 현장을 찾아, 지친 사람들의 손을 감싸 드리는 민생 총리가 되겠다"고 말했다. 어머니 목소리를 들려 준 셈이다.

나라를 가정으로, 국민을 남편으로, 총리를 아내로 볼 때 이 아내는 어떤 모습이어야 할까.

‘옥야여경(玉耶女經)’에서 말했듯이 상황에 따른 여러 모습의 아내―어머니 같은 아내, 누이 같은 아내, 진실한 친구 같은 아내, 며느리 같은 아내 ―가 돼 줄 수 있다면 성공한 여성 지도자의 한 전형이 되지 않을까.

‘21세기 남녀평등헌장’에서 밝힌 바와 같이 20세기가 남녀평등의 씨앗을 뿌린 시대였다면, 21세기는 그 열매를 맺는 시대가 될 것이다.

이번 한명숙 총리 출현은 가정과 직장, 사회와 나라의 모든 부문에서 여성과 남성이 조화로운 동반자 관계를 이룬다는 상징적 의미로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이에 따라 여성들 자신이 자기 삶의 당당한 주체가 되어 사회 발전의 주역으로 나서는 마당에 위의 속담들은 빛이 바랜 채 무대 뒤로 사라져 줘야 할 것이다.


김희진 국립국어원 국어진흥부장 hijin@mct.g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