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 정권현 도쿄특파원은 4월 22일자에 2단짜리 기사를 보냈다.

“일본에서 반(反)북한 활동을 벌이고 있는 ‘조선민주통일구국전선’의장 박갑동(87)씨가 지난 13일 밤 도쿄도내 사무실 앞에서 괴한의 습격을 받는 사건이 발생했다. 도쿄 경시청은 이번 사건을 테러사건으로 보고 수사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병원 관계자는 ‘전치 4주의 외상을 입었으나 특별한 손상은 없다’고 말했다. 박씨는 ‘김정일 정권을 타도하고 망명정부를 수립하자는 나의 주장을 말살하려는 세력에 의한 테러’라고 주장했다.”

박갑동(朴甲東) 그는 누구인가? ¨1919년 경남 산청에서 태어나 중앙고보 재학 중 일본 경찰 구타사건으로 퇴학 ¨일본 와세다 대학 정경학부를 1941년에 나와 지리산에서 학병반대 게릴라 투쟁 ¨해방 후 조선노동당에 들어가 기관지 해방일보의 정치부 수석기자 ¨

46년 박헌영이 북으로 간 후 남로당이 지하화된 후 한국전쟁 직전까지 지하 총책 ¨북으로 가 문화선전성 구라파 부장 ¨55년 박헌영 일당으로 사형집행 대기 중 56년 ‘스탈린 격하’ 운동 여파로 석방 ¨57년 베이징-홍콩-도쿄로 탈출 ¨ 73년 90세가 넘은 어머니가 있는 진주로 18년 만에 귀국 ¨중앙일보에 남기고 싶은 이야기 ‘내가 아는 박헌영’ 연재(1983년 ‘박헌영-그 일대기를 통한 현대사의 재조명’으로 나옴) ¨

88년 소설가 이병주의 ‘한국 현대사의 살아있는 증인’이란 발문을 받고 그의 소설 ‘남노당’의 모델임이 드러난 ‘서울 평양 북경 동경’ 펴냄 ¨91년 자서전적 증언인 ‘통곡의 언덕’ 나옴 ¨98년 김일성 사후의 북한과 남한의 어제, 오늘을 이철승 자유민주민족회의 대표와 함께 대담한 ‘건국 50년 대한민국, 이렇게 세웠다’를 냄 ¨

2003년 7월 조선민주통일구국전선 상임의장으로 미국에 초청되어 미외교정책위원회 세미나에서 “이라크와 아프간에서의 사전 공습 효과를 보면 미국이 북한을 정밀 공격할 경우 김정일은 3일도 못 버티고 중국으로 달아난다. 많은 북한인들은 북한을 구할 유일한 나라는 미국이라 믿고 있다. 미국을 증오하는 선전 벽보는 소수의 북한인만이 김정일을 지지할 뿐이라는 점을 대변한다”고 연설(2003년 7월15일자 주간한국 ‘어제와 오늘’).

이런 박 옹이 테러를 당할 때, 세상은 너무 조용하다. 이런 때 엉뚱하게도 성균관대학 사학과 교수며 역사문제연구소장인 서중석 박사(90년 ‘한국 근현대사 민족운동 연구’로 서울대에서 박사 학위 받음)는 박 옹의 어제와 오늘에 대해 어떻게 생각할까 하는 상상이 내게 생겼다.

그가 2002년 낸 '비극의 현대지도자 - 그들은 민
복주의자인가, 반민족주의자인가'에는 여운형,
김규식, 김구, 이승만, 조봉암, 박정희, 장준하 등
7명 지도자의 비극적 일생이 잘 요약되어 있다.

48년생인 서 박사는 광복 60주년을 맞은 2005년 2월 ‘이승만의 정치 이데올로기’를 펴낸 전후에 10권의 한국 현대정치와 그 지도자에 대한 책을 냈다. 특히 45년 8월 광복 이후 정국의 지도자 이데올로기와 민족주의, 민주주의와의 관계에 연구의 중심을 두고 있다.

그가 2002년 낸 ‘비극의 현대지도자 - 그들은 민족주의자인가, 반민족주의자인가’에는 여운형, 김규식, 김구, 이승만, 조봉암, 박정희, 장준하 등 7명 지도자의 비극적 일생이 잘 요약되어 있다. 한가지 아쉬움은 박갑동 옹이 그려온 ‘박헌영이 빠져있다는 점이다.

서 박사는 ‘비극의 현대지도자’ 맺음말 마지막 마침표를 이렇게 마쳤다. “그렇지만 현대사를 전공하는 입장에서는, 지금까지는 거짓되게 살아왔다 해도 증언만은 참되게 하여 주었으면 하는 마음 간절하다. ‘일본군 성노예’였던 위안부 할머니가 자신이 당한 것을 남편과 자식한테 털어놓은 용기의 100분의 1만 있어도 현대사는 상당부분 사실대로 쓰여질 수 있고, 우리 사회는 그만큼 맑아지고 미래는 밝아질 것이다.”

서 박사에게 박갑동 옹이 앞서 낸 4권의 책 속에 말한 여운형, 김규식, 김구, 이승만, 박헌영의 면모를 ‘맑고 밝은 증언’으로 볼까. 박 옹은 ‘박헌영’의 ‘미 군정하 공산주의’ 장(章) ‘인간 박헌영’ 절(節) 끝맺음에서 썼다.

“어떤 공산주의자는 그것을 (박헌영의 ‘원칙성’, ‘비타협성’) 조국에 대한 일편단심에 기인 한 것이라고 말하지만, 아마도 김구의 ‘비타협성’이 그의 조국에 대한 일편단심과 같다는 것을 박헌영의 그것과 같이 평가하려고 했던 것 같다.”

“내가 보기에 여운형은 우리나라의 스케일을 벗어난 거인으로서 항상 흔들리는 사람이었다. 그가 정치가가 아니라 큰 신문사 사장이나 체육회장직을 했으면 좋았을 것 같다. 그러나 박헌영과 김구는 투쟁적인 정치가 이외에 무엇을 할 수 있었을까 하는 의문을 갖고 있다. 두 사람의 주의, 주장은 정반대의 것이었으나 정치가란 그런 사람들이어야 한다는 내 생각이 잘못된 것일까”

박 옹은 김구와 박헌영을 ‘원칙성’, ‘비타협성’의 '정치가밖에 못 되는 사람’으로 보고 있다.

서 박사는 ‘비극의 지도자’ 여운형 장(章)에서 ‘남북에서 존경받는 포용과 신념의 민족지도자’로 그 표현하고 있다. ‘각계의 힘을 합쳐 건국하려 한 포용의 지도자’라는 절(節)도 있다. ‘넓은 식견과 투철한 신념의 소유자’라는 대목도 있다.

서 박사는 7인의 ‘비극의 지도자’에 박갑동 옹의 증언을 토대로 박헌영을 넣어 보강했으면 좋겠다.


박용배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