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월 5일은 불기(佛紀) 2550년 초파일, 부처님 오신 날이었다. 절마다 형형색색 연등을 내걸며 부처님 탄생을 봉축하고 그 뜻을 기렸다. 지난달 하순에는 지관 조계종 총무원장과 천주교 서울대교구장 정진석 추기경이 화해의 법어와 메시지를 나누기도 했다.

부처님 오신 날을 ‘석가 탄신일’이라고 부르는 것에 관해 생각해 보자. 태어난 날을 가리키는 말은 태어난 주인공이 누구냐에 따라 다음 세 등급으로 나뉜다.

① 생일(生日): 세상에 태어난 날.
② 생신(生辰): ‘생일’을 높여 이르는 말.
③ 탄신(誕辰): ‘생신’을 더욱 높여 이르는 말. 왕이나 성인(聖人)에 대해서만 쓰는 말로, ‘탄일(誕日)’과 같은 뜻임. 예: 석탄일(釋誕日), 성탄일(聖誕日).

‘탄신’이 ‘태어난 날’인데 여기에 ‘일(日)’을 덧붙여 ‘탄신일’이라고 부르는 데서 나타나는 문제점은 ‘외갓집(外家-)’, ‘낙숫물(落水-)’ 같은 단순한 동어 반복에서 그치지 않는다.

‘탄신일’을 ‘탄신 + 일’로 보고 ‘탄신하신 날’로 생각해 ‘탄신’이 곧 ‘탄생’이라고 속단하는 사람이 많다는 데에 문제의 심각성이 크다. 예컨대 정부 부처의 규정 중에 ‘의거(義擧), 서거(逝去), 탄신하신 날’이라는 대목이 있다.

‘의거하다’와 ‘서거하다’라는 말은 있다. 그러나 ‘탄신하다’란 말은 없다. ‘생일하다’, ‘생신하다’라는 말이 없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이 규정을 만든 공무원이 말이 되는 ‘의거하다’ · ‘서거하다’와 말이 안 되는 ‘탄신하다’를 나란히 한자리에 놓은 건 ‘탄신’과 ‘탄생’을 동일시했다는 증거이니 어이없는 일이 아닐 수 없다.

‘석가 탄생일’, ‘석가 탄일’, ‘석가 탄신’, ‘석탄일’은 ‘부처님 오신 날’을 대신하여 써도 좋은 말이다. 다만, ‘석가 탄신일’은 온 국민이 ‘탄신 = 탄생’이라고 오해하게끔 만드는 까닭에 쓰기 거북한 말이다.

주인공의 높은 뜻을 기리며 본받고자 만든 기념일이니만큼 그 명칭부터 바로잡아야 하지 않을까.


김희진 국립국어원 국어진흥부장 hijin@mct.g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