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월 31일 출판사 ‘자음과 모음’은 남북저작권센터와 정식 계약을 맺고 북한 작가 림종상(1933년생, 김일성대학 준박사)이 각색한 ‘안중근, 이등박문을 쏘다’를 냈다. 북한과 계약해 출간한 첫 번째 역사소설이었다.

우연이었을까. 5월 2일 노무현 대통령 주재 청와대 국무회의는 사단법인 안중근의사기념관 건립위원회가 신청한 기부금품 모집허가 계획안을 의결했다.

국민성금 50억원과 정부지원금 등 180억원으로 남산식물원 앞 분수대 자리(일제 때 조선 신궁이 있던 자리)에 2,500평 규모의 기념관을 짓는다는 것이다. 1910년 3월 26일 오전 10시 중국 땅 뤼순에서 교수형이 처해진 후 96년 만에 우연인지 기연인지 책 출판과 기념관 건립이 같이 맞물렸다.

북한에서 림종상의 소설을 굳이 각색이라고 한 것은 1928년 16세의 김일성이 만주 땅 무송에서 ‘안중근···’의 대본을 쓰고 연출했다는 연극을 그가 소설화했기에 그렇게 표현했다. 김일성은 ‘피바다’, ’꽃파는 처녀’ 등 ‘불후의 고전적 명작’을 썼다는데 ‘안중근···’도 명작에 속한다는 것.

이번 ‘안중근···’소설은 2002년 3월에 평양에서 처음 출판됐다. 544쪽의 이 책에는 그동안 일본, 상해 등에서 나온 ‘사전(史傳) 이토 히로부미’(미요시 도오루 지음), 임정의 마지막 대통령 박은식이 쓴 ‘불멸의 민족혼 안중근’ 등이 제시한 사실(史實)과는 사뭇 다르다.

림종상은 1909년 10월 26일 오전 9시 30분 하얼빈에 내린 일본 추밀원장이며 4개월 전까지만 해도 조선통감이던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가 저격 받고 쓰러진 후의 장면을 적고 있다.

“누가 쐈는가?”
이토의 쉰 목소리가 새어 나왔다.
그들은 실망하였다.
일본 정계의 으뜸가는 원로가 생의 마지막을 앞두고 기껏 한다는 소리가 고작 그것인가.
그들은 뜻밖에도 제국의 운명이 아니라 자기 일개인의 운명과 관련된 것을 알자 모두 골살(이맛살)을 찌푸렸다.
“조선 청년입니다.”
고야마(이토의 주치의)가 대답했다.

림종상은 상상했다. 이토의 피격이 중상이 아니었다면 이런 이야기를 했을 것이다.

“일본 제국은 천황이 하사한 칼로써 조선 사람과 조선이라는 땅덩어리는 한때 목 자르고 강점할 수 있을런지는 모르나 결코 조선의 넋을 죽이거나 통치할 수 없는 것을 명백히 알아야 하고 두고 잊지 말아야 할 교훈으로 삼아야 한다는 것을···.”

림종상은 계속 쓰고 있다. “이것은 이등박문이 이 세상에서 가련하게 사라지면서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었을 것이다.”

림종상은 일본어로 '어리석은 녀석'을 '망할
자식'으로 번역했다. 안중근 의사와 마찬가
지로, 이토 히로부미를 조선 독립을 빼앗은
원흉으로 보는 입장에서 '어리석은 녀석'이
란 일본어는 너무 점잖은 말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죽음의 경계선에 다다른 그는 “망할 자식!”하는 짧은 외마디를 지르고 손시늉으로 또 브랜디를 요구하였다. 고야마가 다시 쏟아 부었으나 입도 제대로 벌리지 못한 채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미요시 도오루(三好徹)는 1931년생으로 요미우리 신문기자 출신 추리작가며 논픽션 작가다. 그는 안중근에 대한 “망할 자식!”을 달리 쓰고 있다.

“이토의 비서인 무로타는 이토에게 브랜디를 권했다. ‘저도 총을 맞은 적이 있습니다. 이 정도로 절대 죽지 않습니다!’라고 힘을 북돋우려 했다. 무로타는 미토번 출신으로 메이지유신 무렵 도쿠가와 막부 진영과 싸울 때 오른쪽 어깨에 총을 맞았었다. 이토 역시 그 사실을 알고 있었다. ‘아니 자네보다 내가 많이 맞았네.’ 이토가 말했다. 무로타가 이토의 손을 잡았다. 이토가 물었다.”

“누가 쏘았는가.”
“아직 모릅니다.”
“나는 이제 글렀네. 또 누구 다친 사람 없는가?”
“모리(이토 수행원)가 부상한 것 같습니다.”

의사들이 피하주사를 놓고 붕대를 감았으나 이토는 고통스럽다는 말을 하지 않았다. 이때 러시아측에서 대한제국인 한 명을 저격범으로 체포했다는 보고가 들어왔다.

무로타가 이를 알리자 이토가 신음하듯 ‘그런가, 어리석은 녀석이다’라고 말했다. 그것이 사람들이 들은 이토의 마지막 말이었다. 이토의 얼굴이 창백해지고 혼수상태에 빠졌다.”

림종상은 일본어로 ‘어리석은 녀석’을 ‘망할 자식’으로 번역했다. 안중근 의사와 마찬가지로, 이토 히로부미를 조선 독립을 빼앗은 원흉으로 보는 입장에서 ‘어리석은 녀석’이란 일본어는 너무 점잖은 말이기 때문이다.

림종상의 이토 히로부미는 쏘아 없애야 할 조선 독립의 탈취자였고 ‘어리석은 녀석’이라고 안타까움이 든 표현을 썼을 리 없다는 속생각이 숨어 있다.

독일의 철학자 니체는 “끊임없이 고통스러운 것만이 기억에 남을 수 있다”고 했다.

림종상의 ‘안중근···’에는 31세 안중근 의사의 망국의 고통이 이토 히로부미의 조선 말살 강행과 엇갈려 흥미있게 묘사되어 있다.

안중근의사기념관 건립위원회는 꼭 림종상의 책을 읽고 그를 남한으로 초청해 남산, 남대문, 왜성대에 스며있는 1905~1910년 사이에 고통받던 안중근 의사의 기억을 재현하길 바란다.


박용배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