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로 연극배우 김동원 씨 별세

“사느냐 죽느냐 그것이 문제로다” 선택의 기로에 섰던 햄릿의 비장한 고뇌는 시대를 관통하는 명대사로 남았다. 한국 배우 중 햄릿 역을 처음으로 맡아 ‘영원한 햄릿’으로 불린 연극배우 김동원 씨는 한국 연극사의 첫 페이지를 연 명배우로 길이 남을 것이다.

그가 5월 13일 서울 이촌동 자택에서 숙환으로 별세했다. 향년 90세.

1932년 연극 '고래'로 무대에 선 뒤 33년 배재고등보통학교 5학년 때 '성자의 샘'에 출연해 배우로 살 것을 결심한 것으로 알려진 고인은 94년 국립극단의 '이성계의 부동산'을 끝으로 300여 편의 연극에 출연했다.

극예술을 공부하고 싶다며 34년 일본 니혼(日本)대학 예술과에 입학해 ‘동경 학생예술좌’를 창립했으며 이듬해 ‘소’로 창립공연을 가졌다.

48년 ‘밤의 태양’으로 영화에 처음 출연했으며, 50년에는 이해랑, 이화삼, 김선영, 황정순 등과 함께 극단 신협(국립극단 전신) 멤버로 활동을 시작했다.

51년 대구 키네마극장에서 우리나라 최초로 ‘햄릿’으로 관객과 만난 것을 비롯, 네 번이나 햄릿 역을 맡았던 고인은 이로 인해 '영원한 햄릿', '한국의 햄릿'이란 별명을 얻은 국내 연극계 1세대의 산 증인이었다. 54년에는 연극 작품 가운데 처음으로 극단 신협의 '인수지간'을 자신의 연출로 무대에 올렸다.

이후 영화 '자유부인'과 '마의 태자'(1956), '종말 없는 비극'(58), '춘향전'(61), '청춘교실'(63), '저 하늘에도 슬픔이'(65) 등 70년대까지 영화에 꾸준히 출연했다.

연극 대표작 가운데 하나인 '세일즈맨의 죽음'(57), '뇌우'(88)에 출연했으며 64년 TBC 수사극 '바이엘극장' 등을 통해 안방극장에서도 연기를 펼쳤다. 75년에는 국립극단장을 맡기도 했다.

고인은 2003년 펴낸 자서전 ‘미수의 커튼콜’에서 “배우란 남의 삶을 대신 살아주는 직업이기에 원래의 자신을 철저히 잊고 맡은 역할의 사람으로 다시 태어나야 한다”며 “그러기 위해선 항상 자신을 돌아보고 다양한 체험을 얻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배우관을 피력했다.

극단 산울림의 임영웅 대표는 그러한 고인에 대해 “옷도 잘 차려 입는 베스트 드레서였고, 후배들에게도 자상하게 잘 대해줬다”며 “술과 담배도 안 하는 단정하고 완벽한 영국 신사였다”고 회고했다. 이런 신사적인 면 때문에 '한국의 로렌스 올리비에'로 불리기도 했다.

서울시 문화위원(1963), 한국연극협회 부이사장(69), 중앙국립극단 지도위원(85), 중앙국립극단 연극분야 명예종신단원(94), 대한민국예술원 연극ㆍ영화ㆍ무용분과 회장(94-99) 등을 지냈다.

서울시 문화상(1956), 대한민국 예술원상(66), 국민포장(72), 대한민국 문화예술상(82), 보관문화훈장(90), 3ㆍ1문화상(95) 등을 받았다.

유족으로는 부인 홍순지 여사와 아들 덕환(전 ㈜쌍용 사장)ㆍ진환(우리자산관리㈜전무이사), 세환(가수) 씨가 있다. 생전 “내게 연극은 예술도 직업도 아닌 삶 자체”라고 밝혔던 고인은, 마지막 순간에도 영정 속에서 ‘햄릿’의 모습으로 세상의 무대와 작별했다.


배현정 기자 hjbae@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