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월 말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5·31 지방선거를 두 달 앞두고 우리말 용어를 공모했다.

정책 선거를 실현할 목적으로 누구나 쉽게 이해하고 이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도록 유도하는 ‘매니페스토(manifesto)’ 운동에 해당하는 우리말을 찾아보려 한 것. 공모 결과 3,301편이나 접수됐지만 최우수작은 뽑히지 못했다. 각

정당이나 후보자가 내놓는 선거공약을 사업의 목표, 우선순위, 절차, 기한, 재원을 수치로 명기해 검증과 평가를 쉽게 받도록 하자는 개념을 담은 응모작이 눈에 띄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에 위원회는 논의를 거쳐 ‘참공약 선택하기’란 말을 만들어 사용하기로 하고 이를 널리 알렸다. 그런 지 한 달. 지금도 ‘참공약 선택하기’보다는 ‘매니페스토’가 더 많이 쓰인다.

○ ‘매니페스토'로 선진 선거문화 정착을 (5. 12. ㅎ신문)
○ 군수 후보 매니페스토 협약식 가져(5. 12. ㅇ신문)
○ 큰 바람 몰아온 매니페스토, 정착될 수 있을까? (5. 10. ㅍ신문)
○ ‘매니페스토’ 시작하자마자 끝(5. 10. ㅅ신문)

이처럼 언론에서 즐겨 쓰는 ‘매니페스토’를 국민은 얼마나 알아듣고 있을까.

국립국어원이 4월 24일부터 이틀간 성인 남녀 508명을 대상으로 정부 홈페이지에 자주 등장하는 외국어·외래어 20개를 선정해 모 조사 기관에 의뢰하여 인지도를 조사한 결과, 뜻을 정확히 아는 경우는 평균 18.5%에 그쳤다.

선거철을 맞아 정부 부처나 언론매체에 자주 등장하는 ‘매니페스토’는 6.0%만이 ‘뜻을 안다’고 답하여 평균을 훨씬 밑돌았다. 결국 10%도 안 되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이 말을 해 온 셈이다.

아쉬움은 또 있다. 투표를 권하는 다음 문안을 보자.(문안의 띄어쓰기 등은 있는 그대로 보인다.)

○ Pride 5·31―함께하는 당신이 아름답습니다.
○ 소리·자막: 너의 목소리를 듣고 싶어. -Beautifulday-
○ 소리(음악): You are so beautiful.

우리가 우리 땅에서 일할 우리 일꾼을 뽑는데 왜 영어로 해야 하나.

20~30대 젊은이들을 겨냥한 것이라고 할지 모르나, 젊은층 중에 우리말 사랑 실천에 앞장선 사람이 적잖다는 사실을 모르고 하는 소리다. ‘매니페스토’를 우리말로 바꾸고자 했던 정성을 홍보 내용에서도 보였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그런 점에서 다음의 선거 홍보물은 소박하면서도 친숙하게 느껴진다.

○ 위원장: 아, 여러 의원님들, 수고 많으셨습니다. 이상 두 개의 안건에 모두 동의하신 걸로 알고 가결을…… .
○ 의원: 이의 있습니다.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제가 아무리 아무리 생각해 봐도 지역 발전을 최우선으로 고려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여러 의원님들…….

위 문안이 흠잡을 데 없는 건 아니다. ‘여러 의원님’ 뒤에 ‘들’을 붙였다든지 ‘생각해 봐도 ~ 생각합니다’ 식으로 했다든지 하여 깔끔한 맛을 떨어뜨린 점은 재고해야 한다. 그래도 ‘참공약 선택하기’ 운동을 일찌감치 확산시키고, 투표율을 높이고자 여러모로 애써 온 위원회는 국민에게 고마운 존재이다.

다음 선거에선 정겨운 우리말로 참된 선거 문화를 선도하는 모습을 보이리라 기대해 본다.


김희진 국립국어원 국어진흥부장 hijin@mct.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