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욱 WHO 사무총장 뇌경색으로 별세

‘한국인 최초의 유엔 산하 국제기구 수장’으로 잘 알려졌던 이종욱 세계보건기구(WHO) 사무총장이 5월 22일 갑작스레 별세했다. WHO 총회 개막을 이틀 앞둔 20일 스위스 제네바 자택에서 뇌경색으로 쓰러진 이 총장은 병원으로 옮겨져 수술을 받았으나 끝내 깨어나지 못했다. 향년 61세.

WHO는 인류를 위협하는 에이즈와 결핵 등 각종 질병 퇴치와 예방에 앞장서고 세계 각국의 보건 통계와 의료 행정을 지원한다. 한 해 예산만 22억 달러에 이르고 전문 직원들도 5,000여 명에 달하는 유엔 산하 최대 국제기구다.

WHO 사무총장의 위상은 유엔 사무총장 다음 서열인 사무차장에 해당하며 국가 원수에 준하는 예우도 받는다. 고인은 2003년 5월 임기 5년의 WHO 사무총장에 선출돼 3년째 조직을 이끌어 왔다.

서울대 의대 출신의 이 총장은 대학 시절 경기 안양시 나자로 마을에서 한센병 환자를 돌보면서 ‘봉사하는 의료인’의 삶에 눈을 떴다. 이때 만난 일본인 여성 가부라키 레이코와는 평생의 반려자로 인연을 맺었다.

1976년에 대학을 졸업한 후 곧바로 남태평양의 작은 섬나라 피지로 부인과 함께 떠났다. 가난하고 힘없는 빈곤 국가 환자들에 대한 의료 봉사의 출발점이었다.

그는 83년 피지에서 WHO의 서태평양지역사무처 한센병자문관으로 일하면서 WHO와 인연을 맺었다.

이후 서태평양지역사무처 질병예방관리국장, 본부 예방백신사업국장, 결핵관리국장 등을 거쳤다. 특히 예방백신사업국장으로 일하면서 소아마비 유병률을 세계 인구 1만명 당 1명 이하로 떨어뜨리는 업적을 남겨 ‘백신의 황제’라는 별명을 얻기도 했다.

고인은 WHO 사무총장으로 재임하는 동안에도 왕성한 활동을 벌여 왔다. 아프리카 등 저개발 국가의 전염병 및 에이즈 예방, 조류 인플루엔자(AI) 확산 방지와 백신 개발 사업은 그가 혼신을 바쳤던 일이었다.

하지만 그는 인류의 건강과 안녕을 위한 중차대한 과업이 끝나지 않은 가운데 세상과 너무 이른 작별을 고했다. WHO는 “지도자를 갑작스럽게 잃어 우리는 넋을 놓고 있다”는 성명을 발표할 만큼 충격이 컸다.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 등 세계 각국의 주요 지도자들이 그의 갑작스런 죽음에 한목소리로 큰 슬픔과 안타까움을 나타낸 것은 고인이 그동안 남긴 발자취와 앞으로 해야 할 과제가 그만큼 컸음을 보여준다.

유족으로는 부인 가부라키 여사(61)와 미국 코넬대 전기공학과 박사 과정의 아들 충호(28)씨가 있다.


김윤현 기자 unyon@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