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희진 국립국어원 국어진흥부장.
8년 전인 1998년 6월 1일, 호암상(湖巖賞) 시상식 자리. 예술 부문 수상자 최명희 작가가 수상 소감을 말하였다.

(앞 생략) 언어는 정신의 지문(指紋)이고 모국어는 모국의 혼(魂)이기 때문에 저는 제가 오랜 세월 써 오고 있는 소설 ‘혼불’에다가 시대의 물살에 떠내려가는 쭉정이가 아니라 진정한 불빛 같은 알맹이를 담고 있는 ‘말의 씨’를 심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사실 이 ‘혼불’을 통해서 단순한 흥미의 이야기가 아니라 정말 그 누천 년(累千年) 동안 우리의 삶 속에 면면(綿綿)히 이어져 내려온 우리 조상의 숨결과 삶의 모습과 언어와 기쁨과 슬픔을 발효시켜서 진정한 우리의 얼이, 넋이 무늬로 피어나는 그런 글을 쓰고 싶었습니다. (뒤 생략)

작가가 원했던 방향으로 글을 쓰고자 어떻게 애써 왔는지 큰 틀에서 논하는 일은 관련 학계에 미루기로 한다. 다만, 낱말 하나도 허술하게 대하지 않은 작가의 일면을 그 한 해 전 국립국어원에 초청되어 들려 준 이야기 속에서 찾아본다.

봄날 얼어붙은 강이 풀려 흐르는 소리가 듣고 싶어 일부러 북한강 가로 갔어요. 이 물소리가 여름 강물, 가을 강물, 봄 강물, 혹은 봄 중에서도 살얼음이 녹으면서 흐르는 강물 소리가 다 다를 것만 같았어요. 가만히 듣고 있는데 ‘소살소살’ 이렇게 들려요. ‘소살소살 소살소살’ 이렇게. 우리나라 산천에 불고 있는 바람이나 냇물 소리나 기침 소리나 이걸 고대로 해 보고 싶어요.

그리고 저녁의 종소리, 절에서 들리는 종소리, 저희 집에서 멀지 않은 조그마한 암자에서 종소리가 들리는데 ‘강~강~’ 이렇게 들려요. 그때 전 우주가 흔들리는 걸 느꼈어요.

문맥에 맞는 형용사 하나를 쓰고자 국어사전을 이리저리 훑어 ‘풍연(豊衍)하다’를 찾아냈고, 작중 인물의 성품에 어울리는 택호(宅號)를 정하고자 땅 이름 사전을 몇 번이나 뒤진 끝에 ‘아느실’을 발견했다는 그의 이야기는, 소설 ‘혼불’을 쓰는 데에 왜 17년이나 걸렸는지를 이해하게 한다. ‘혼불’을 제대로 읽기 위해서는 ‘혼불 사전’이 따로 필요할 만큼 국어사전에 없는 말도 적잖다.

이어 작가는 그냥 지나쳐 버리기 쉬운 사물 하나하나의 존재와 그 독자성을 소중히 여겨야 한다고 강조하기도 하였다.

콩 알맹이가 하나 땅에 떨어져 그 캄캄한 어둠을 견뎌내 싹이 터 비바람 부는 데서 자라나 꽃 피워 열매 맺으면 그걸 빻아 볶아 ‘커피’라는 게 생기잖아요. 커피 마실 때 한 번쯤은 커피대로 좀 맛을 봐 주신다면 커피도 저 생겨난 보람을 할 거예요.

그 길고 긴 세월을 ‘커피’로 살아왔는데, 드디어 자기가 생겨난 이제 그 하나의 미학적 완성의 순간에 찻잔 속에서 그 맛이 제대로 보여지기도 전에 설탕·우유와 함께 막 뒤섞여 뭐가 뭔지도 모르게 목으로 넘어간다면 참 아까울 것 같아요.

▲ 최명희 문학관.

자신의 언어가 고향의 불빛 같은 ‘징검다리’가 돼서 자신이 알고 있는 우리말을 한 소쿠리 건져 내어 자신이 살아온 모국에 바치고 싶다던 최명희 작가.

빛나는 시상식에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우면 안 될 것 같아 중환자임에도 화사하게 차려 입고, 정성껏 준비한 수상 소감을 또박또박 말하던 작가는 그 해 12월 11일 눈을 감았다. 집필이 언제 끝날지 작가 자신도 모른다던 ‘혼불’을 남겨 두고서…….

작가가 실토했듯이 ‘손가락으로 바위를 뚫어 글씨를 새기는 것 같은’ 치열한 마음가짐으로 임하지 않는 한 살아 남은 사람들이 ‘혼불’ 이야기를 이어 가기는 어려울 성싶다.


김희진 국립국어원 국어진흥부장 hijin@mct.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