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대로 된 말과 아주 비슷하여 그럴듯하지만, 실은 그게 아닌 것. 어떤 잇속을 차리려고 일부러 그리 한 것은 아닌데, 음이나 뜻을 혼동한 까닭에 잘못 말하여 듣는 이를 혼란스럽게 하는 예가 있다. 이런 경우, 국어사전에도 없고 딱 들어맞는 말도 아니지만 편의상 ‘발음 혼동어’라고 부르고자 한다. 언론 보도에서 그 예를 찾아본다.

① 방방곳곳 붉은 물결

앵커: (앞 생략) 우리의 거리응원,이번에도 빼놓을 수 없죠.(중간 생략)
마침내 기다리던 골.
환호성을 지르며 서로를 부둥켜안습니다.
술집에서도,찜질방에서도 사람들이 모인 곳은 어디에서든 응원 열기가 이어졌습니다.

①의 ‘방방곳곳’이 뭘까. “한 군데도 빠짐이 없는 모든 곳”을 나타내는 ‘방방곡곡(坊坊曲曲)’의 ‘곡곡’이 ‘곳곳’으로 바뀐 것이다.

중심 뜻인 ‘모든 곳’의 ‘곳’에 이끌린 듯하다. ‘골골샅샅’, ‘면면촌촌(面面村村)’이라고도 하는 ‘방방곡곡’. “삼천리 방방곡곡”, “방방곡곡 안 다닌 데 없이 다녀 봤다”처럼 쓰여 왔음을 기억하자.

② 9년 전 발생한 교통사고로 사랑하던 아내를 잃고 당시 운전하였던 아들이 사고 피해자였음에도 담당 경찰관, 가해자, 사고 목격자가 공모하여 ‘아들을 피해자에서 가해자’로 바꿔치기하여 억울한 옥살이를 하였고, 그로 인한 정신적, 물질적 황폐화로 가정은 풍지박산 났다고 남 씨는 주장한다.

②에서 말한 ‘풍지박산’은 “사방으로 날아 흩어진다는 뜻의 ‘풍비박산(風飛雹散)’의 발음 혼동어. 바람을 타고 날아간다는 ‘풍비’와, 우박이 흩어진다는 ‘박산’을 합친 말이 ‘풍비박산’이다.

이를 ‘풍지박산’이라고 하는 사람은 바람이 휘몰아치는 풍지(風地)나 세찬 바람에 찢겨 나가는 문풍지(門風紙)가, 가문이 기울어지는 참담한 상황을 그려내는 데에 더 잘 어울린다고 생각하는지도 모른다.

③ 지난 1970년 오 단장은 홀홀단신으로 독일로 건너갔다. 초기에는 많이 힘들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말이 안 통하고 어려움을 함께할 친구조차 없는 이국에서 속상한 일이 생겨도 어디 하소연할 곳도 없었다.

③의 ‘홀홀단신’은 “의지할 곳이 없는 외로운 홀몸”이라는 뜻을 지닌 ‘혈혈단신(孑孑單身)’의 발음 혼동어다.

‘홀몸’이란 배우자나 형제가 없는 그야말로 고독단신(孤獨單身)이다. 이 ‘홀몸’의 ‘홀’에 이끌리고 ‘혈’과도 혼동하여 ‘홀홀단신’이라고 하는 건 아닐까. ‘외로울 혈(孑)’ 자(字) 자체가 “子(자)의 오른팔이 없는 모양”을 본뜬 것으로, ‘혈혈(孑孑)’이란 “우뚝하게 외로이 선 모양”이나 “의지(依支)가지 없이 외로움”을 뜻하는 말이다.

‘혈혈단신’의 용례로 “이듬해 봄 첫아이를 보았다. 아들이었다. 반백 년을 혈혈단신으로 견뎌 온 처지에 얻은 혈육이니 세상에 둘도 없는 귀둥이일 수밖에” (이문구, 해벽), “그는 달리 갈 곳도, 가족도 없는 혈혈단신 외돌토리였다(최인호, 지구인)”가 보인다.


김희진 국립국어원 국어진흥부장 hijin@mct.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