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끝주 며칠간은 37조 원의 재산을 사회에 환원하겠다고 발표해 주목받고 있는 워렌 버핏이 뉴스의 중심인물이 되었다. 그런데 이 아름다운 ‘기부자’의 재산 규모가 세계에서 몇 순위인지를 알리는 방식이 언론사 간에 차이를 보였다.

① 세계 두 번째 갑부이자 370억 달러 상당의 자산을 빌 & 멜린다 게이츠 재단 등 자선 단체에 기부할 뜻을 밝혀 전 세계적 이목을 끌고 있는 워렌 버핏(75).

② 경제전문지 '포브스'에 의해 부동의 세계 갑부 2위로 군림하고 있는 '투자의 귀재' 워런 버핏 버크셔 헤더웨이 회장 겸 최고경영자.

③ 세계 2위 갑부 워렌 버핏이 부(富)의 왕조적 세습과 상속세 폐지에 반대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④ 세계 2위의 부자 워런 버핏 버크셔 해서웨이 회장이 내달부터 자신의 재산 가운데 85%에 해당하는 374억 달러(약 36조 원)를 5개 자선단체에 기부한다고 발표했다.

위에서 보듯 주인공을 ‘세계 두 번째 갑부’, ‘세계 갑부 2위’, ‘세계 2위 갑부’, ‘세계 2위의 부자’ 등 네 가지로 소개했는데 이들의 말뜻은 다 같을까. 즉 ‘갑부’가 곧 ‘부자’일까.

‘갑부(甲富)’의 ‘甲(갑)’이라는 글자는 새싹이 트면서 여전히 씨앗 껍질을 뒤집어쓰고 있는 모양을 본뜬 것으로, 싹이 나기 시작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이것이 바뀌어 ‘처음’, ‘제일’, ‘첫째’, ‘첫째가다’를 뜻하게 되었다.

또한 ‘갑(甲)’은 십간(十干)의 첫자리를 차지한다. 성적이나 실적을 평정할 때 분야에 따라서는 ‘갑(甲)·을(乙)·병(丙)·정(丁)…’으로 하기도 하는데 이때 ‘갑(甲)’이 모든 평정의 으뜸이 됨은 물론이다.

결론적으로 ‘갑부’와 ‘부자’는 똑같은 말이 아니다. ‘부자 중의 부자’, 즉 ‘최고의 부자’, ‘일등 부자’가 ‘갑부’다.

국어사전에서도 ‘갑부’를 “첫째가는 큰 부자”로 풀이한다. ‘마포 갑부’라 하면 마포에서 첫째가는 부자요, ‘당대의 갑부’라 하면 당대에 으뜸가는 부자인 것이다.

이런 뜻을 지닌 ‘갑부’에 ‘두 번째’, ‘2위’를 붙인 ‘두 번째 갑부’, ‘세계 갑부 2위’, ‘세계 2위 갑부’가 어울릴 리 없다. ‘일등’이면 ‘일등’이지 ‘두 번째 일등’, ‘세계 일등 2위’, ‘세계 2위 일등’이라고 말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 비추어볼 때 ‘세계 2위의 부자’라고 밝힌 ④가 워렌 버핏의 재산 순위를 정확하게 표현하였다.

아울러 재산 규모가 그 윗자리에 있는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 회장을 소개한 다음의 기사를 보자.

⑤ 워런 버핏은 특히 기부금 대부분을 세계 1위의 부자인 빌 게이츠(50) 마이크로소프트 회장 부부가 운영하는 ‘빌 앤 멜린다 게이츠재단’에 보내기로 해 큰 감동을 주고 있다.

⑥ 워런 버핏 회장은 세계 1위 갑부인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MS) 회장과 각별한 우정을 나누고 있다.

⑤는 ‘세계 1위의 부자’라는 뜻을 고스란히 담고 있는 ‘세계 갑부’로 줄이고, ⑥은 같은 뜻이 겹치는 데서 오는 번거로움을 피해 ‘세계 갑부’로 줄이면 더욱 간결해진다. 갑부는 그 순위를 나눠가질 수 없다.

세계 갑부는 현재 빌 게이츠 한 사람이다. 워런 버핏 회장이 ‘세계 제2위의 갑부’가 아닌 ‘세계 제2위의 부자’가 되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김희진 국립국어원 국어진흥부장 hijin@mct.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