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3 개각 발표 이튿날인 4일 청와대에서 열린 국무회의를 주재한 노무현 대통령의 표정은 어두웠다.

회의 전 읽었을 한국, 중앙, 동아일보 등 세 신문의 사설은 교육부총리 내정자 김병준 전 청와대 정책실장의 임명에 대해 의외로 실명까지 거론하며 철회를 요구했기 때문일 것이다.

한국일보는 ‘‘김병준 부총리’ 철회하는 게 좋다’라는 사설에서 주장했다.

“노무현 대통령이 끝내 김병준 전 청와대실장을 교육부총리에 내정한 것은 실망스럽다. (···) 대통령의 사람이라는 점 외에 굳이 그에게 교육수장의 자리를 맡겨야 할 이유를 알 수 없다.”

중앙일보는 ‘김병준 교육부총리 임명은 안된다’는 제목으로 주장했다.

“3일 김병준 전 청와대 정책실장을 교육부총리로 내정한 것은 유감이다. 김 후보자는 5·31 지방선거에서 사상 유례없는 민심의 분노를 불러일으킨 장본인이다. 그 책임을 물어 마땅한 인사에게 국가의 백년대계를 기획할 역할을 맡기는 것은 국민의 뜻을 무시한 처사다.”

동아일보는 내정을 하루 앞선 7월 3일자에 ‘‘失政참모’ 김병준 씨가 교육까지 ‘칼질’ 하면’이란 제목으로 좀 에둘러 비판했다.

“교육부총리로 김병준 전 대통령 정책실장 기용이 확정적이라고 한다. 그는 평소 지인들에게 ‘총리는 나이(52세) 때문에 그렇고, 교육부총리는 한번 해 보고 싶다’고 말했다고 한다. 본인이 자리를 탐낸다는 사실 말고는 그가 교육수장이 돼야 할 이유를 우리는 모르겠다. 그는 행정학 교수였다지만 ‘교육행정’까지 섭렵할 인물은 아니다. 굳이 이유를 찾자면 1993년부터 정치인 노무현의 ‘지방자치연구소’에 참여한 이래 노 대통령의 손꼽히는 심복이라는 정도다.”

노 대통령은 이런 사설들을 읽었기에 국무회의에서 참석 장관들을 챙기는 등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어떻든 속이 아파가···. 속이 아프니까 하는 얘깁니다. 이 정부가 끝날 때까지 이런 유형의 속앓이는 계속 될 겁니다. (스스로 다짐하듯) 그래도 좋은 일도 많이 있을 테니까요. 다시 희망을 갖고 해 봅시다.”

속앓이 발언에 대해 청와대 관계자는 “개각에 대한 언론들의 비판이 너무 심하다. 대통령 ‘속앓이 발언’ 은 호의적이지 않은 언론 보도를 지칭한 것이다”고 풀이했다.

노 대통령의 속앓이를 낫게 할 처방은 없는가. 만약 노 대통령이 진맥을 바란다면 누가 하는 게 좋을까를 상상해 보았다.

대통령을 민주화하자. 민중권력의
대변자인 대통령을 민주제도 속의
대통령으로 바꾸어야 한다.

먼저 증상을 들어보고 처방할 의사로 지난 6월 10일 ‘민주주의의 민주화’를 펴낸 고려대 최장집 교수(1943년생, 아세아문제연구소 소장, DJ 정부 대통령자문 정책기획위원장)가 떠올랐다.

최 교수는 6월 30일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있은 6·10 항쟁 19돌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학술대회에서 주제 발표자의 한 사람이었다. 발제 제목은 ‘한국 민주주의와 제도적 실천으로서의 민주주의’였다.

최 교수는 5공 시절 6월 항쟁을 끌어낸 86년 3월 개헌서명에 나선 고려대 28명 교수 중 한 사람이었다. 98년 10월에는 ‘월간조선’이 그의 논문 중 ‘6·25는 김일성의 역사적 결단’이라는 내용을 왜곡·과장되게 보도해 자신의 명예를 실추시켰다며 발매 가처분신청을 제기해 승소하기도 했다.

그가 2002년 11월에 펴낸 ‘민주화 이후의 민주주의’는 6·10 항쟁 이후 노태우, 김영삼, 김대중 정부의 민중 운동과 민주주의가 어떻게 발전했느냐를 보여주는 객관적 시각의 저서로 평가 받았다.

이번의 ‘민주주의의 민주화’는 노무현 정부의 3년간의 발전과 후퇴를 해석하고 분석한 것이다.

미국 시카고대학 정치학 박사인 그는 좌·우 양쪽에서 ‘존경 받는 지식인’으로 인정 받고 있다.(강준만 전북대 교수)

또한 6월 30일 발표 후 동아일보 권재현 기자는 노 대통령의 지지를 철회한 지식인의 한 사람으로 평가했다.

최 교수는 학술대회에서 요약했다. “지금의 민주주의 위기를 바라보는 두 개의 시선은 ‘운동’으로 풀거나 ‘제도’를 잘 만들거나 하는 것이다. 이 양극단을 넘으려면 정당이 제 역할을 하면 된다. 정당이 ‘제도적 실천’으로서의 민주주의다.”

“한국의 민주화는 운동의 민주화로 요약할 수 있다. 그 결과 중산층과 기득권 세력들은 운동세력에 대해 일정한 부채의식 내지 열등감을 가졌다. 지금은 ‘운동의 탈동원화’라는 벽에 부딪혀 있다. 운동 시기의 민주파(노무현, 김대중 정부의 지도층)들의 이상은 현실에서 그에 부응하는 정당의 건설을 통하지 않고는 불가능하다. 정당 만들기에 나서야 한다.”

“대통령을 민주화하자. 대통령은 인격체가 아니라 민주주의 제도다. 민주주의에 대해 여러 고민이 있었지만 정작 가장 중요한 제도인 대통령에 대해선 별다른 논의가 없었다. 민중권력의 대변자인 대통령을 민주제도 속의 대통령으로 바꾸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정당이 있어야 한다.”

“한국에서의 정당은 사회·경제적 삶의 피폐화나 불평등의 심화를 정당 간 경쟁을 통해 의제로 삼지 못하고 있다.”

“우리가 하나의 체제를 민주주의라고 말할 때 그 체제는 ‘스스로 통치해야 한다’는 조건이 있어야 한다. 그 조건이 정당이다.”

노 대통령은 속앓이를 고치기 위해 최장집 교수의 진단을 꼭 받아 봤으면 좋겠다.


박용배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