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하, 무사히 건넜을까.”

시인 김동환이 바라본 국경은 두려움과 공포로 가득했다. 그래도 살기 위해선 국경을 넘어야했다. 그 이전 월강죄(月江罪)가 발목을 잡았지만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 목숨을 걸어야 했다. 구한말 우리의 역사이자 냉혹한 현실이었다.

국경을 넘었다고 따뜻한 봄이 기다린 것은 아니었다. 시베리아 칼바람을 조금이나마 밀어내야 둥지를 틀 수 있었다. 연해주 이주민들은 그렇게 동토의 땅에 뿌리를 내렸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땅은 또다시 뒤틀려 뿌리는 뽑히고 잘려나갔다. 일제의 총칼이, 스탈린의 1937년 광기가 무자비하게 피를 불렀다. 고려인의 과거와 현재다.

그래도 이들은 척박한 땅에서 꽃을 피웠다. 그래서 영웅 칭호도 뒤따랐다. 100년 가까이 베이고 찢긴 상처도 어느정도 아물어갔다. 그런데 구 소련이 해체되고 독립국가에 민족주의 바람이 일면서 또다시 상처를 건드렸다. 삶의 터전을 포기하거나 완전히 굴복(동화)하라는 최후 통첩이었다.

일부 고려인은 차별을 감수했고, 일부는 터전을 떠나 무국적자가 됐다. 조상이 첫발을 내디딘 연해주도 쌀쌀하기는 마찬가지다. 연해주 4만여 고려인 중 무국적자가 1만 명을 넘는다. 그들에게 가해지는 온갖 어려움을 막아줄 방어벽은 없다.

조국은 있으나 무관심하다. 일부 단체와 개인들이 온기를 불어넣지만 역부족이다. 하지만 그들이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손을 내미는 동포애는 동토의 땅에 지쳐있는 그들에게는 희망의 다리이다.

고려인이 누구인가. 핍박의 역사에 밀려 국경을 넘고, 때로는 불의의 역사에 항거해 목숨을 던진 이들의 후손이 아닌가. 음지의 역사를 떠안고 양지의 기운을 불러낸 핏줄이 아닌가.

정말 우려되는 것은 ‘마음의 국경’이다. 그들과 우리는 전혀 관계없는 남이라는.

“아아, 무사히 건널 수 있을까.”


박종진 차장 jjpark@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