①단호박 크림스프, ②계절 샐러드에 토마토·피망, ③쇠안심 석쇠구이에 마늘소스, 더운 야채, ④잔치국수, ⑤마블 치즈무스, ⑥커피 또는 홍차, ⑦모듬떡

어느 호텔 예식부에서 마련한 피로연의 차림표다. 음식 값이 만만치 않을 이 차림표는 상아색 리본까지 달고 식탁 한가운데에 놓여 있다.

③의 ‘야채’. 일본식 용어 ‘야사이[野菜, やさい]’의 힘에 밀려, 우리가 오랫동안 써 왔으면서도 이런 고급스러운 자리에 끼지 못하는 ‘채소(菜蔬)’가 안쓰럽다.

⑦의 ‘모듬떡’. 근래에 학교에서도 ‘분단(分團)’ 대신 쓰는 ‘모둠’이 있으니 이 말에 맞춘 ‘모둠떡’이라고 하는 것이 좋겠다. ‘모둠’에 ‘순대’, ‘회’, ‘김밥’, ‘안주’가 붙으면 ‘모둠순대’, ‘모둠회’, ‘모둠김밥’, ‘모둠안주’가 됨은 물론이다.

호텔 뒤의 음식점 거리의 한 식당. 차림표가 출입문과 벽에 걸려 있다.

떡볶기/김치찌게/살찐 돼지 껍데기

떡볶기. 가래떡을 토막 내어 쇠고기와 여러 가지 채소를 넣고 얼큰하게 양념하여 볶는 행위라면 ‘떡볶기’지만 그렇게 하여 만든 음식은 ‘떡볶이’다.

찌게. 뚝배기나 작은 냄비에 적당량의 물에 고기·채소·두부 따위를 넣고, 간장·된장·고추장·젓국 따위를 쳐서 갖은 양념을 하여 끓인 반찬은 ‘찌개’를 표준으로 잡고 있다.

살찐 돼지 껍데기. ‘돼지’ 앞뒤 말이 다 정확하지 않다. 대체로 ‘살찌다’는 사람에게 쓰지만, 살이 많고 튼실한 동물(사람 제외)이나 식물에는 ‘살지다’를 쓴다. ‘살지고 싱싱한 물고기’, ‘살진 토마토’가 그 예다.

‘껍데기’는 달걀·조개 등의 겉을 싼 단단한 물질을, ‘껍질’은 귤·양파·사과 등의 겉을 싼 부드러운 층(켜)을 가리키므로 ‘돼지’에는 ‘껍질’이 더 잘 어울린다. “껍질 상치 않게 호랑이를 잡을까”, “껍질 없는 털이 있을까”라는 속담도 있다.

부엌에서 조리하며 나누는 말이 들린다.

국물이 다 떨어졌어요. 다시를 더 만들어야겠어요.
오늘 같은 날, 닭도리탕 먹으면 맛 있을 텐데…… .

‘다시[出し, だし]’는 ‘맛국물’로, ‘닭도리탕[-鳥湯-, -とり-]’은 ‘닭볶음탕’으로 부르도록 이미 다듬은 바 있다.

그 옆집은 횟집. 손님에게서 주문받은 주인이조리실을 향해 외친다.

아나고회 일인분! 지리 하나!
와사비도 넉넉하게 놓지 그래.

‘아나고[穴子, あなご]’는 ‘붕장어’로, ‘지리[←じる,]’는 ‘맑은탕 · 싱건탕’으로, ‘와사비[山葵, わさび]’는 ‘고추냉이’로 순화하였다.

길거리의 한 포장마차에도 차림표가 보인다.

오뎅 / 정종

‘오뎅[御田, おでん]’은 ‘꼬치’로 순화하였는데 요즘은 ‘어묵’의 뜻으로 더 많이 쓰인다. ‘정종(正宗)’은 일본 마사무네[正宗, まさむね] 가문에서 빚은 술에서 유래한 것으로 ‘청주(淸酒)’로 순화된 말이다.

맛 있는 음식에 멋 있는 차림표. 깔끔하게 잘 다듬어진 차림표를 보고 싶다.


김희진 국립국어원 국어진흥부장 hijin@mct.g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