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석 통일부 장관 "인내심 갖고 북과 대화하겠다"

“유엔의 대북결의안을 지지하며 이를 정확히 분석해 차분히 대응하겠다.”

20일 정부중앙청사에서 정례 정책브리핑을 한 이종석 통일부 장관의 얼굴에는 짙은 그늘이 져 있었다. 북한 미사일 사태에 대처하는 정부의 외교·안보정책이 표류하고 있다고 정부의 무능을 질타하는 소리가 높은 데다가 집중포화의 표적이 자신인 것에 대한 고민의 표정이었다.

전날 우리 정부의 쌀ㆍ비료 대북지원 유보 방침을 핑계 삼아 “이산가족 상봉의 중단과 금강산 면회소 건설을 중단하겠다”고 북한으로부터 뒤통수를 맞은 이 장관은 이날 목소리 톤은 그러나 결코 낮지 않았다.

“국제사회와 대화하려는 자세를 보이지 않는 (북한의) 태도는 잘못됐다”, “그렇다고 해서 압박과 제재만으로 문제를 풀려는 (미·일의) 움직임도 적절치 않다고 본다”면서 벼랑끝 전술과 대북 강공책을 밀어붙이는 북한과 미ㆍ일의 태도를 모두 비판한 것이다.

이 장관은 그러나 국민들 앞에는 몸을 한껏 낮췄다.

“남북 간 대화와 교류협력은 조급하게 한다고 되는 일이 아니다”고 다시 한번 이해를 구하면서 “어렵더라도 인내심을 갖고 대화를 해야 한다”고 북한과 대화의 끈을 놓지 않겠다는 정부의 입장을 애써 설득했다. 8월 이산가족 상봉을 기대해온 이산가족들에게 “송구하다”는 말도 빠뜨리지 않았다.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사무차장에 이어 통일부 장관에 오른, 참여정부의 통일·안보 정책의 실세인 이 장관이 요즘 사면초가에 빠졌다. 대화의 통로를 유지하겠다며 시작했던 19차 남북 장관급회담이 성과 없이 13일 조기 종결된 데 이어 이상가족 상봉마저 중단됐고, 21일에는 금강산에서 이산가족 면회소를 건설하던 남측의 현장 인력도 철수를 시작하는 등 남북관계가 겹겹의 난기류에 빠져들었기 때문이다.

국내외 보수세력들의 융단 압력에도 불구하고 남북대화 채널을 유지하려고 안간힘을 써온 이 장관을 궁지에 빠뜨린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다름아닌 북한이다.

북한이 미사일을 시험 발사한 지난 4일 오전 열린 안보관계장관회의에서는 장관급회담을 미뤄야 한다는 주장이 국방부와 외교부 일각에서 터져 나왔다. 이런 대북 강경론을 누그러뜨린 것은 이 장관이었다. “대화의 문은 열어둬야 한다”며 “장관급회담에서 미사일과 6자회담 복귀 문제만 논의하겠다”고 고육책을 내놨다.

그런데 북한의 잇단 트집잡기로 남북문제가 더 꼬이니 이 장관이 국내 보수세력들로부터 뭇매를 맞게 된 것은 어떻게 보면 당연한 수순. 여기다 진보진영으로부터는 “보수 여론에 지나치게 휘둘리고 있다”는 비아냥을 듣고 있으니 좌우에서 모두 협공을 받고 있는 형국이다.

미·일의 못마땅한 시선은 더 큰 부담이다.

북한의 6자회담 복귀 거부와 미사일 발사에 따라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대북 결의안 채택과 추가 경제제재 검토 등으로 미국과 일본의 대북 압박 수위를 시시각각 높여가도 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 정부가 내놓을 카드는 한계가 있는 것이다. 이 장관의 고민이 점점 더 깊어갈 수밖에 없는 이유다.

북한의 미사일 발사 사태 이후 안팎, 좌우의 4중고에 직면한 이 장관이 미·일과 북한 사이에서 나름의 역할을 할 묘수를 찾아낼 수 있을지, 아니면 중도에 좌절할지, 그와 그의 대북정책의 운명이 모두 기로에 서있다.


송강섭 차장 special@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