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복의 달인 올해 8월은 어떻게 지나갈까.

한나라당 박근혜 전 대표는 최근 어머니 육영수 여사의 32주기 추도식이 있는 8월15일에 추도사를 읽을 시민을 7월 30일까지 공개 모집한다고 그녀의 홈페이지에 실었다. 응모자는 30여명에 달했다고 한다.

박 전 대표는 그것에 앞서 7월 14일 서울 성균관대학 교수 식당에서 ‘박정희 평전-박정희의 정치사상과 행동에 관한 전기적 연구’를 쓴 전인권 박사의 1주기 추모식과 출판기념회가 열린 것을 알고 있었을까.

전인권 박사(1957~2005) 도대체 누구인가. 가수 전인권의 동명이인인가.

이 책을 낸 이학사의 강동권 대표는 자신있게 그를 소개한다. “아직도 박정희는 독재자 또는 영웅으로 그 평가가 극단적으로 엇갈리고 있다. 이러한 상황 때문인지는 몰라도 박정희가 죽은 지 거의 30년이 되어가는 지금까지 그에 대한 평전은 한 권도 나오지 않았다. (···) 이 책은 우리 주위의 정치세계를 직접 텍스트로 하여 매우 독창적인 해석학적 성찰을 보여주던 촉망받던 한 젊은 정치학자가 우리에게 ‘마지막으로’(유고로) 남긴 ‘최초’의 본격적인 박정희 평전이다.”

“정치평론가(1997년 15대 대선에 앞서 ‘김대중을 계산하자’ 펴냄), 미술평론가(1999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미술 평론 ‘이중섭 연구’ 당선. 2000년 ‘아름다운 사람 이중섭’ 발간), 저술가(2003년 ‘남자의 탄생’ 펴냄)이자 2001년 ‘박정희 정치사상과 행동에 관한 전기적 연구’로 서울대에서 정치학 박사를 받은 정치학 학자인 전인권은 박정희 연구를 필생의 업으로 삼아 분명한 방법론과 정치학적 통찰을 가지고 비평적이면서도 객관적으로 이 책 ‘박정희 평전’을 썼다. 따라서 이 책은 박정희에 대한 인식과 논의를 한 단계 끌어올림으로써 우리사회에-그가 박정희를 찬성하든, 반대하든 간에- 박정희에 대한 생산적인 논쟁을 불러일으킬 수 있을 것이다.”

전인권 박사는 1979년 10월 26일 박정희 사후 한동안 ‘버림받은 독재자’였던 그가 갑자기 요즈음 ‘박제된 영웅’으로 취급되는 역사를 정치전기학적(정치분석학+전기)으로 쓰고 있다. 그는 또 인류심리학(인류+심리학)과 문학적 고찰로 박정희의 내면을 살핀다. 그는 전기를 “양심을 가진 시다”고 생각한다.

1937년 3월 어느날 대구사범 5학년 때 박정희가 쓴 ‘대자연’이란 시를 분석했다. 이 시에는 자연을 빛댄 그의 ‘영웅’숭배론이 들어 있다.

<1. 정원에 피어난/ 아름다운 장미꽃보다도/ 황야의 한 구석에 피어있는/ 이름 없는 한 송이 들꽃이/ 보다 기품 있고 아름답다.

2. 아름답게 장식한 귀부인보다도/ 명예의 노예가 된 영웅보다도/ 태양을 등에 지고 대지(大地)를 일구는 농부가/ 보다 귀하고 아름답다.

3. 하루를 지내더라도 저 태양처럼/ 하룻밤을 살더라도 저 파도처럼/ 느긋하게, 한가하게/ 가는 날을 보내고 오는 날을 맞고 싶다. 이상>

전인권 박사는 1979년 10월 26일
박정희 사후 한동안 '버림받은 독재자'
였던 그가 갑자기 요즈음 '박제된 영웅'으로
취급되는 역사를 정치전기학적
(정치분석학+전기)으로 쓰고 있다.

전인권은 이 시의 2절 중 ‘명예의 노예가 된 영웅보다도’라는 구절이 10대 중반 청년으로서 박정희의 영웅에 대한 사색이 깊었음을 보여준다고 분석했다. 또한 그가 생각한 영웅은 ‘하루를 지내더라도 저 태양처럼’ 사는, ‘느긋하게 한가하게’ 사는 그런 영웅이었다. 특히 시의 맨끝에 ‘이상’이라 추가한 것은 “시작과 끝을 분명히 하는 그의 성격을 보여준다”고 썼다.

전인권은 박정희를 “말의 인간이 아니라 글의 인간”으로 봤다. 그래서 그의 투박한 시에서 그의 인생관을 볼 수 있었다.

1950년 12월 12일 육영수와 결혼한 육군 중령 박정희는 이듬해인 1951년 10월 30일 밤 34세에 대령으로 진급해 육군 정보학교 교장을 맡을 때 ‘인생’과 ‘역사’에 관한 감상적인 시를 썼다.

<하늘도 자고 땅도 자고/ 사람도 잠자는 고요한 밤/ 벌레 소리 처량히 들려오는/ 어두운 가을밤/ 길게 내뿜는 담배연기만/ 어둠 속에 흡수되어 버리고/ 캄캄한 어둠 속에 한없이 헤매고 찾아도/ 담배연기처럼 걷잡을 수 없는/ 길고 고요한 가을밤/ 길고 아득한 유구한 역사 속에/ 찰나 찰나의 생명을 연결하는 인간이/ 그러나 찰나에 사라지는 담배연기처럼 사라질 인간이란 것을 알면서도(···) 지구는 돌고 역사는 가고/ 세월 흐르고 인생은 늙고/ 밤이 가면 내일에 새날이 온다는 것은/ 가을밤 어둠 속에 사라지는 연기처럼 삭막한/ 인생의 부질없는 노릇이여>

전인권은 이 시에는 허무주의를 뜻하는 ‘찰나에 사라질 담배연기처럼’이란 구절이 자주 등장하지만 허무에 그치지 않고 있다고 봤다. ‘밤이 가면 내일에 새날이 온다는 것을’ 알고 있는 ‘태양처럼 불꽃처럼’ 살겠다는 의지가 보인다고 분석했다.

그러나 박정희의 그 후는 ‘버림받은 독재자’로 불리는 길로 들어선다. 그는 부인 육영수가 피살된 지 1년여 후인 75년 12월 31일 ‘제야(除夜)’라는 시를 지었다.

<지구는 돌고돌고/ 일월이 가고 또 오고/ 세월은 흘러흘러/ 역사의 수레바퀴는/앞으로 또 앞으로 굴러가는데/ 인생은 늙고 또 가노니/ 세월과 인생과 역사가/ 서서히 장엄하게/ 움직이는 모습이/ 눈으로 완연히 보이는 듯한/ 제야의 종소리는 은은히 흘러서/ 그믐밤 어둠 속으로/ 멀리멀리 사라져 가도다.>

이 시는 1951년 10월의 ‘인생과 역사’에 대한 감상보다 진전이 있었다. ‘지구는 돌고’, ‘역사는 가고’ 그러지만 벌써 집권 15년째에 접어든 박정희에게 ‘역사의 수레바퀴는/ 앞으로 또 앞으로 굴러가는 데’ 그렇지 않았다. 그건 ‘박제된 영웅’으로 가는 길이었다.

그 이유는 무엇 때문일까. 전인권 박사는 결론내렸다. “그의 집권 18년 5개월여 동안, 일생 62년 동안 단 1년도 민주주의를 학습할 기회가 없었다. (···) 민주주의와 아무런 관련이 없다는 면에서 그는 몰(沒)민주주의자였다. 무(無)민주주의자였다.”

박근혜 전 대표는 꼭 전인권의 ‘박정희 평전’을 읽어보길 바란다. 2007년 대선 과정에 불거져 나올 생산적 ‘박정희’담론을 위해서라도.


박용배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