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한 번도 이 땅의 주인인 적이 없었다.’영화 ‘한반도’의 광고 카피다. 웅변조의 경고 내지 훈계에다 쇼비니즘적 요소까지 덧칠해 영화가 짜증스럽고 부담스러운 것은 차치하더라도 광고 카피만큼은 요즘 되새겨봄 직하다.

북한의 7ㆍ5 미사일 사태 이후 국내엔 온통 미국과 일본의 프리즘이 난무했다. 북한은 조지 W.부시 대통령이 말한 것 이상으로 ‘악의 축’으로 각인됐다. 정부는 국내외 여론에 편승, 인도적 경협도 단절하는 강수를 두어 미ㆍ일의 우방국임을 과시했다.

그러나 현실을 냉정하게 한번 보자. 자국의 목적을 위해 이라크, 아프카니스탄, 남미, 아프리카 등지에서 비인도적 만행을, 이스라엘의 야만적인 레바논 폭격에는 애써 눈감는 미국은 무언가.

식민지 지배 36년 동안 민족말살정책에 대한 사과는 도외시한 채, 자국민 납치 사건을 핑계로 호들갑스럽게 북한을 압박하는 일본의 이중성과 위선은 또 무언가. 한반도 위기를 조장하고 실제적으로 이익을 얻고 있는 측은 누구인가.

게다가 중국은 미ㆍ일처럼 드러내놓지는 않지만 교묘하게 한반도를 옥죄고 있다. 북한은 전반적으로 중국에 예속되어가는 상황이고 군부와 행정관료, 테크노크라트에 친중파(親中派)가 늘고 있다. 남한 경제는 수출 구조나 규모에서 과도하게 중국에 의존, 그들의 입김에서 벗어날 수 없게 되어 있다. 한반도에 중국이라는 그림자가 갈수록 짙어지는 양상이다.

동아시아 전문가인 개번 맥코맥 박사는 “북한 문제는 ‘서울이 그 중심’일 때만 해결 가능하다”고 말한다. 우리가 이 땅의 주인일 때만 남북한이 한 민족으로 살아갈 수 있다는 충고다.

이제 미국의 광학렌즈로 북한을 보던 데서 벗어나 낡고 가끔씩 초점이 맞지 않더라도 우리의 줏대 있는 안경을 쓸 때다. ‘우리가 한 번도 이 땅의 주인인 적이 없었다’는 말은 사라져야 한다. 영화 ‘괴물’에서처럼 ‘더 큰 괴물’이 아른거리는 것은 혼자만의 환영일까.


박종진 차장 jjpark@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