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정사상 첫 여성 헌재 소장에 지명

“무겁고 두려운 마음으로 소임을 받아들이겠다.”

16일 신임 헌법재판소 소장에 지명된 전효숙(55ㆍ사시 17회) 헌재 재판관이 소감을 묻는 기자들에게 답한 말이다. 헌정사상 최초의 여성 헌재 수장 지명이란 의미에도 불구하고 그의 소감은 의외로 짤막했고 어조는 절제돼 있었다. 국회 임명동의 절차를 앞둔 말 아끼기이거나, 아니면 ‘코드 인사’ 논란을 의식한 말조심인 것으로 보인다.

2003년에도 여성 최초의 헌법재판관에 임명된 전 소장 지명자가 내달 초 국회인사청문회를 거쳐 임명 동의안이 통과되면 1988년 헌재가 출범한 이래 첫 여성이자 최연소 헌재 소장이 탄생한다. 연장자나 고시ㆍ사시 선임 기수가 소장을 맡아온 관례도 깨지게 된다. 또 재판관에서 소장으로 내부 발탁되는 첫 사례이다.

전 소장 지명자는 그러나 지명되자마자 ‘코드 인사’ 논란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노무현 대통령과 사시 17회 동기인 데다가 2년 전 신행정수도특별법 위헌 결정 시 유일하게 각하 의견을 내는 등 과거의 일부 판결에 대해 야당과 보수 성향의 인사와 단체들이 문제를 제기하는 것.

여야를 비롯한 정치권, 법조계 안팎에서는 그의 지명 직후에 찬반이 분분하다. 여기에다 4기 헌법재판소를 함께 이끌 새 재판관으로 지명된 5명의 면면에 대한 뒷말도 있다. 참신한 인물의 발탁이 적고 일부 재판관은 노 대통령의 사법연수원 동기 친목 모임인 8인회 멤버이기 때문에 지명된 것이 아니냐 라는 것. 앞으로 그의 여정이 순탄치 않을 것임을 예고한다.

전 소장 지명자의 판결 성향에 대해서는 ‘개혁적’이라는 게 일반적 평가다. 그동안 사회적 소수자 문제에서도 소신 있는 모습을 보여 왔다.

서울지법 부장판사이던 1997년에 “수사과정에서 가혹행위가 없었더라도 무리한 구속수사로 피해를 봤다면 국가에 배상 책임이 있다”고 판결을 했고, 98년 제일은행 소액주주 소송 재판에서는 부실경영을 한 은행장과 임원 등에게 400억원을 배상하라는 판결을 내려 소액주주들의 권익을 보호하는 전례를 남겼다.

전 소장 지명 자체만으로 헌재에 변화가 시작됐다는 소리가 나오는 것도 그의 이런 판결 성향과 무관치 않다. 청와대도 지명 이유에 대해 “사회적으로 중요한 재판에서 항상 소수자의 권익을 보장하는 의견을 내는 등 헌재가 사회적 약자와 소수자 보호나 복지ㆍ환경 등 새로운 가치를 적극 수용하도록 이끌 적임자로 평가됐다”고 말했다.

더군다나 새로 내정된 재판관들은 대체로 중도 성향이 강해 4기 헌법재판소에서는 보수 색깔이 많이 엷어질 것으로 보인다. 우선 연내 판가름 날 사립학교법 위헌 여부 결정이 바로미터가 될 것으로 전망된다.

비교적 순탄한 판사의 길을 걸어온 전효숙 헌재 소장 지명자. 그에게는 그동안 ‘여성 최초’란 꼬리표가 따라 붙었다. 첫 여성 고등법원 형사부장과 헌재 재판관에 이어 이제 ‘3관왕’을 눈앞에 두고 있다.

그가 국회 임명동의를 무난히 통과하고 보수로 기울었던 헌재에 새 바람을 일으키면서 사회의 다양한 갈등을 공정하게 해결하는 ‘균형추’ 역할을 할 수 있을지 주목된다.


송강섭 차장 special@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