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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어생각] 애끊다/애끓다




중국 진나라의 장군 환온이 배를 타고 촉나라로 가던 중 양자강의 삼협에 이르렀을 때, 부하 한 사람이 절벽에 있던 새끼 원숭이 한 마리를 사로잡았다. 애완용으로 기를 셈이었다.

이를 알아챈 어미 원숭이가 슬피 울며 뱃길 옆의 절벽을 타고 계속 따라왔다. 백 리나 되는 길을 따라오다가 배가 절벽 근처로 다가오자 어미는 위험을 무릅쓰고 배 안으로 뛰어들었다. 그러고는 지친 나머지 숨을 헐떡이다 이내 죽고 말았다.

환온이 어미 원숭이가 죽은 이유를 알아보려고 그 배를 갈라 보게 했더니 놀랍게도 어미의 창자가 마디마디 끊어져 있었다. 새끼 잃은 슬픔으로 창자가 다 끊어지고 만 것이다.

이 이야기는 ‘애끊다’의 전형적인 예가 된다. ‘애끊다’의 ‘애’는 ‘창자’의 옛말이요, ‘쓸개’의 옛말이다. 이들 장기(臟器)를 칼로 베어 낼 때 겪어야 하는 말할 수 없는 고통을 ‘애끊다’로 표현한 것이다.

언론에서, 일상에서 ‘애끊다’, ‘애끓다’가 적잖게 쓰인다. 몇몇 예를 살펴본다.

① '가시리'는 애끓는 이별의 정을 읊은 작품이다.

‘가시리’는 떠나간 연인을 그리워하는 이의 심정을 그렸다. 그 심정은 몹시 슬퍼서 창자가 끊어질 듯할 것이니 ①은 ‘애끓다’가 아닌 ‘애끊다’로 써야 정황에 더 잘 어울릴 것이다.

② 갯벌 익사사고로 남매 잃은 아버지의 '애끊는 사연'

익사사고가 난 갯벌로 수련회 오기 전 아이들이 피자를 사 달라고 졸랐지만 돈이 부족해 칼국수를 사 준 것이 자식들과의 마지막 외식이 되었다. 이 일이 더욱 가슴 아픈 사연으로 남으니 ②는 ‘애끊다’의 용법에 맞게 쓰였다.

다음의 예문은 어떤가.

③ 발달장애아 부모의 애끓는 심정
④ 거리를 헤매는 고학력 청년의 애끓는 호소


③은 발달 장애가 있는 어린이가 지도 교사가 말려도 아랑곳하지 않고 자신이 하고 싶은 대로만 하는 모습을 보는 그의 부모를, ④는 취업에 필요한 조건을 충실하게 갖추고도 취업에 매번 실패하여 낙담하는 청년을 각각 그리고 있다.

이들의 공통점은 ‘답답함’과 ‘안타까움’이다. 이때 쓸 수 있는 말이 ‘애끓다’이다. ‘애끓다’는 ‘몹시 답답하거나 안타까워 속이 끓는 듯하다’이다.

자식을 저 세상으로 먼저 보내야 했던 부모는 ‘애끊는’ 슬픔에 빠질 것이다. 오죽하면 자식을 산에 묻지 않고 평생 가슴에 묻는다고 했을까. 이번 수해로 쑥대밭이 된 삶터를 지켜봐야만 했던 분들은 ‘애끓는’ 목소리를 낼 것이다. 할 일을 제대로 할 수 없게 되면 ‘애끓는’ 목소리를 내게 된다.

자질도 뛰어나고 포부도 있는 자식을 제때 제대로 뒷바라지 못한 부모는 어느 쪽일까. 애끊기도 하고 애끓기도 할 것이다. 이는 동서고금이 다르지 않다. 어디 인간뿐이랴. 잡아먹혀 뼈만 남은 수달이 새끼들 있는 쪽으로 옮겨가 감싸안은 이야기가 ‘삼국유사(三國遺事)’에 있다. 될 수 있으면 애끊는 일도 애끓는 일도 줄여 보려고 우리가 열심히 살아가는 것인지도 모른다.



입력시간 : 2006/08/28 11:42




김희진 국립국어원 국어진흥부장 hijin@mct.g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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