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여 일 만에 나타나 사진을 찍은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의 모습은 색달랐다.

북한군 제757부대 축산기지 토끼목장 지배인 가족과 촬영한 그는 뒷짐을 지지도, 무엇을 지적하는 손짓을 하지도, 웃지도 않았다. 지배인의 딸인 듯한 여성이 똑바로 서있는 간편복 차림의 김정일 오른팔을 살짝 끼고 약간 몸을 기울인 것. 그의 표정은 담담했고 지배인 부부는 차렷 자세였다.

김 위원장은 딸에게 좀더 팔을 벌려주든지, 차렷 자세를 누그려뜨리게 했어야 하지 않았을까. 그런데 왜 그랬을까.

이에 앞서 부시 미국 대통령은 8월 10일 “새로운 세계전략으로 ‘도둑정치(kleptocracy)’와의 전쟁을 선언한다. 독재와 부패로 한 나라의 국부를 멋대로 주무르며 독재자와 하수인의 배만 채우는 정권을 응징하겠다”고 했다.

부시의 ‘도둑정치’가 어떤 것인가에 대해 국무부 경제·기업담당 차관 조셋 사이너는 브리핑 했다. “북한은 여러 면에서 특별 관심국가이지만 이 점에서도 핵심적인 대상이다.”

“모든 수준에서 부패가 존재하고 부패의 공급과 수요 양측면이 모두 있는 북한은 ‘거대한 부패(grand corruption)’다. 고위층 부패가 정부 전반과 체제에 확산돼 국가발전에 쓰여야 할 종자돈(core fund)이 불법적인 목적들에 유용되는 대표적 사례다.”

한국일보 고태성 워싱턴 특파원은 이런 견해를 해석했다. “이는 달러 위조 및 가짜 담배 제조 등으로 벌어들인 돈이 북한 최고위층으로 흘러들어갈 뿐만 아니라 이 자금이 핵과 미사일을 비롯한 대량살상무기 개발에 사용되고 있음을 지적한 것이다.”

그래서 김정일은 ‘도둑정치’가 아님을 알리려 토끼농장에 나타나 오른팔을 끼도록 지배인 딸에게 허용했을까.

대답이 될는지 모르겠다. 1987년 3월에서 1994년 3월까지 7년여를 북한의 외무성 산하 해외출판공사의 영어 교정원으로 일했던 마이클 해로드(현재 바르사바 비즈니스 저널 고문)는 2004년 4월에 ‘동무들과 이방인들-장막에 가린 북한에서’를 펴냈다.

해로드는 북의 ‘영생의 주석’이 된 ‘위대한 수령’ 김일성과 그의 장남 ‘친애하는 지도자’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연설 및 전기, 그들과 관련된 영문기사를 영어답게 손질해주는 카피라이터였다.

해로드는 북의 '영생의 주석'이 된 '위
대한 수령' 김일성과 그의 장남 '친애하
는 지도자'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연설
및 전기, 그들과 관련된 영문기사를 영
어답게 손질해주는 카피라이터였다.

그는 도착 때부터 일기 검열, 숙소의 도청, 감시에 둘러싸여 있었지만 만나는 북한 사람들의 김일성 부자에 대한 충성과 숭배의 변화는 그에게 계속 이곳에 머물도록 했다.

서울에서 88올림픽이 개최되기 전 어느 봄날. 백두산 등 ‘수령의 전적지’를 순례한 그는 ‘친애하는 지도자’가 공부했다는 평양근교의 군사대학도 둘러볼 것을 권유받았다.

단층 건물인 이 대학에는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재학 중 사용했다는 물컵, 망원경, 총들이 잘 보존되어 있었다. 안내원은 대학에서 멀지 않은 언덕을 가르키며 ‘친애하는 지도자’가 “자신을 가르친 선생과 학생들에게 전략적 지침을 준 곳”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안내원에게 말했다.

“그곳에 기념표적이 있겠군요. 거기 가봅시다.”
“있지만 당신은 갈수 없소.”
“왜?”

안내원은 놀라 입을 다물지 못했다. 해로드는 ‘아차’하고 느꼈다. “내가 또 잊었구만. 북한에서는 ‘왜(why)’라는 질문에 대한 답변이 돌아오지 않는다는 것을”.

그는 이미 깨닫고 있었던 것을 잠시 잊은 것이다. 그가 1년여 동안 북한에서 느낀 것은 “북한 인민에게는 무엇 (what)을 하라는 말은 전해져도 ‘왜 하는가’의 질문에 대한 설명은 없었다. ‘얼마나(how), 어떻게 할것인가’에 대한 대답은 있었다.”

“외국인이 모이는 호텔에서 접대원이 그들에게 ‘나이가 몇이오’, ‘얼마나 버오’, ‘무엇을 이곳에서 하오’는 있어도 ‘왜 이곳에 왔소’라는 질문은 없었다.”

해로드는 많은 북한인들이 참관하는 ‘친애하는 지도자’의 전술 지시 표적지를 보지 못하고 숙소로 돌아왔다. “왜 그들은 나를 막았을까?”하는 불만은 커졌다. 외국에서 외교관 자제로서 공부한 한 북한 통역원이 설명해주었다. “그곳에는 이방인(외국인)이 보면 안 되는 군사시설이 있기 때문이지요. 그렇게 괘념하지 마시오.”

해로드는 그가 베이징에서 본 김대중 대통령과 김정일 위원장의 정상회담 장면을 보고 결론내리고 있다.

“참말로 1987년 북한에 올 때는 천진스러웠다. 맥주 한두 잔을 서로 나누면 ‘이방인’은 ‘동무’가 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천진스러움은 냉소로, 비판으로 변해갔고 그들은 나를 ‘명사’에서 ‘의심스런 전문가’로 보게 됐다. 그러나 나는 북한사회 관료들의 부패가 사라지고 ‘왜?’에 대답해주는 사회가 될 때가 올 것이라는 나의 천진스러움을 깊게 믿고 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꼭 해로드의 ‘동무들과···’를 영어 원문으로 읽어봤으면 좋겠다. 그 책에는 미사일, 핵, 대미관계에 대한 해결책이 들어있다.


박용배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