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고태성 워싱턴특파원은 걱정스러워 한다. 9월 14일로 잡힌 노무현 대통령과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의 정상회담 전망이 어둡기 때문이다.

지난해 말까지 백악관 국가안보회의 아시아담당 선임국장을 지낸 마이클 그린(조지 타운대 교수 재직) 등 워싱턴의 각종 싱크탱크에 속한 한반도 및 동북아 전문가들의 예견도 비슷하다.

“노 태통령이 어떤 정치적 입장과 자세를 갖고 정상회담에 나올지 알 수 없기 때문에 예측이 어렵다.”

“워싱턴을 오고 갈 때 제발 시끄럽게 떠들지 말았으면 좋겠다”는 거친 표현도 나왔다.

조선일보 워싱턴특파원을 지내고 서울에 와 정치부 기자가 된 강인선(차장 대우)도 두 정상의 만남을 “레임덕 대통령들의 정상회담”이라면서 불안감을 나타냈다.

“언제부터인가 한.미 정상회담은 동맹이 삐걱거리고 북핵 문제로 위기감이 고조될 때마다 안보 불안을 잠재우는 ‘외교적 진정제’로 사용돼 왔다. 같은 성분의 주사라면 이제 내성이 생겨 맞으나마나다. 아프고 힘들더라고 ‘안보각성제’가 필요하다. ‘자주’에 취하고 ‘외교 진정제’에 둔해진 상태에서 핵무장한 북한을 이웃을 두고 살고 싶지 않다면 말이다.”<이상 8월 21일자 보도>

이런 걱정스런 전·현 워싱턴 특파원의 눈초리에 노 대통령도 마음 편히 워싱턴을 가는 것 같지 않다.

8월 13일에 일부 언론 외교.안보 담당 논설위원과의 비공개 대담에서 노 대통령은 밝혔다.

“6자회담 재개 문제는 더 할 수 있는 일이 있을지 모르겠다. 상황이 더 악화하지 않도록 관리해 다음 정권에 넘겨주는 게 최선이라는 생각도 든다. 좌절감도 느낀다. 그래도 해야 할 일은 하겠지만 내 마음이 그렇다는 얘기다.”

“역사적으로 문명국임을 자부하는 나라들이 야만국에 자신의 룰을 강요했듯이 미국이 북한을 보는 시각도 문명이 야만을 대하는 것과 비슷한 듯하다. 말하자면 야만인에게 민주주의, 시장경제 등 문명의 룰을 따르라고 하는 식이다. 그런대 이보다 더 중요한 것은 공정성이다. 미국이 북한을 공정하게 대하고 있는지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안보문제에서 부시 정부하고 잘 되지 않는 경우가 있는 건 사실이다. 한때 크리스토퍼 힐과 우리 정부가 밀월인 때가 있었는데, 힐이 미국으로 돌아가고 나서 상황이 바뀌었다. 지난해 봄 정동영-김정일 면담부터 9·19까지 괜찮았는데, 미국이 방코 델타 아시아(BDA) 건을 들고 나오면서 틀어졌다. 개인적으로는 부시 대통령이 나를 좋아한다. 분명히 좋다고 하더라. 그건 자산이라고 할 수 있다.”

노 대통령, 고 특파원, 강 전 특파원의 대미 시각과 인식 속에 깃든 불안감을 해소시킬 묘약은 없을까.

노 대통령은 '노무현이 만난…'
의 서문을 꼭 영어로 번역해 이번
정상회담에 가져가길 바란다.

해답이 될는지 모르겠다.

부시 대통령은 8월 4~13일까지 텍사스 목장에서 휴가를 보내며 5~6권의 책을 읽었다. 그중 2권이 링컨에 관한 것이었다. 그중 1권은 옥스포드 대학교 리처드 카워딘 역사학 교수가 쓴 ‘링컨-삶의 목적과 권력’. 또 한 권은 샌프란시스코 신학대 로널드 화이트 교수가 쓴 ‘링컨의 위대한 연설들’이다.

카워딘 교수의 ‘링컨’은 지난해 링컨 관련 서적에 게티스버그대학교가 주는 ‘링컨상’을 영국인이 쓴 책으로는 처음 수상했다.

‘링컨’은 416쪽의 방대한 것으로 “대서양을 사이에 두고 미국의 가장 위대한 대통령으로 추대 받는 16대 미국 대통령을 중립적으로 탁월하게 추적, 묘사했다”는 평을 얻었다.

카워딘은 링컨에 관한 각종문서, 서신, 공판자료, 연설문을 미국인이라는 시각을 넘어 객관적으로 추적했다. 링컨은 “친절하고, 점잖으며, 정직하고, 재치있고, 슬기있고, 욕심없는 사람의 대표다”는 것이 그의 개인 성격 묘사다.

링컨은 이런 성격의 단순한 개인이 아니었다. “정치인으로서, 대통령으로서의 링컨은 한 번도 거부권을 행사하지 않고도 의회를 장악했다. 연립정부인 전시내각의 장관들에게 재량을 주었지만 주요한 문제는 직접 처리했다. 군 통수권자로서 전쟁을 수행하며 작전권에도 참여했다. 정당의 지도자로서 군중을 동원하는 데 탁월했으며 정당이 편협성을 가질 때는 국가 통합에 장애가 된다는 점을 인식하고 있었다. 무엇보다 그는 미국 국민의 다수가 노예제와 흑인의 차별에 대해 죄의식을 느끼고 있다는 여론을 파악하는 능력이 탁월했다.”

이번에 부시가 카워딘의 ‘링컨’에 관심을 쏟는 이유를 서평자들은 추적했다. 역사 작가인 케빈 베이커(‘항쟁하는 자의 진국’의 저자)는 평했다. “카워딘의 ‘링컨’에는 그의 인간적인 면보다, 그 자신이 미국을 통합시키고 민주공화국 체제를 유지시켜야 한다는 운명을 타고난 기독교적인 소명의 인간임을 실증적으로 밝혀낸 데 있다.”

부시는 그의 임기 중 마지막이 될 한미 정상회담의 상대자인 노무현 대통령이 2001년에 ‘노무현이 만난 링컨’이란 책을 쓴 저자임을 모를 것이다. 노 대통령의 책에는 카워딘에게 버금가는 링컨에 대한 그 나름의 해석이 있다. “겸손한 권력으로 강한 나라를 만든 정치인”이라는 것이다.

노 대통령은 ‘노무현이 만난···’의 서문을 꼭 영어로 번역해 이번 정상회담에 가져가길 바란다. 그 전에 카워딘의 ‘링컨’을 읽어 부시와 독후감을 서로 나누면서 ‘링컨’을 연계한 ‘한미 동맹’을 튼튼히 해주길 바란다.


박용배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