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십육계’는 말 그대로 서른여섯 가지 병법을 담고 있다.

제1계(計)~제6계(計)는 승전(勝戰)의 계(計), 제7계~제12계는 적전(敵戰)의 계, 제13계~제18계는 공전(攻戰)의 계, 제19계~제24계는 혼전(混戰)의 계, 제25계~제30계는 병전(倂戰)의 계, 제31계~제36계는 패전(敗戰)의 계로 흔히 분류하기도 한다.

“동쪽에서 소리치고 서쪽으로 공격한다”는 제6계 ‘성동격서(聲東擊西)’가 승전의 계, “웃음 속에 칼날이 숨어 있다”는 제10계 ‘소리장도(笑裏藏刀)’가 적전의 계, “잡으려면 잠시 내버려 둔다”는 제16계 ‘욕금고종(欲擒故縱)’이 공전의 계, “먼 나라와 사귀고 이웃 나라를 공격한다”는 제23계 ‘원교근공(遠交近攻)’이 혼전의 계, “나그네 처지에서 주인 자리를 차지한다”는 제30계 '반객위주(反客爲主)’가 병전의 계, “미녀를 이용해 적장(敵將)의 마음을 꾀어낸다”는 제31계 '미인계(美人計)'가 패전의 계로 우리에게도 잘 알려져 있다.

그럼, 제36계는 무엇인가. “도망가는 것을 상책으로 삼는다”는 ‘주위상(走爲上)’으로, 이는 패전의 계에 속한다. 상황에 따라서 일부러 후퇴하는 것도 성과를 낼 수 있는 병법이라는 것이다. 사람이 죽으면 아무 소용이 없으므로, 전세(戰勢)가 불리하면 일단 퇴각하였다가 전력을 길러 다시 싸울 수 있게 하자는 뜻이다. 병력이 열세이면 물러나고, 승산이 없으면 싸우지 않는다는 원칙을 따른 셈이다.

그런데 다음의 예에서 보이는 ‘삼십육계 줄행랑’이란 어찌 된 말인가.

문이 열리는 소리는 들리지 않고 하여 이상해 "누구냐"고 계속 물었는데도 대답이 없었다. 그래서 문 아래로 내렸다봤더니 사람 그림자는 있는데 발이 보이지 않아 너무 놀라 삼십육계 줄행랑을 쳤다.

이 ‘삼십육계 줄행랑’과 관련지을 만한 이야기를 ‘자치통감(資治通鑑)’ 141권에서 찾아본다.

중국 남북조 시대 제(齊)나라 황제 명제(明帝) 때의 일이다. 명제는 고제(高帝)의 사촌형제로, 고제의 증손인 제3, 4대 황제들을 죽이고 황제 자리에 올랐다. 황제가 된 후에도 반란과 보복이 두려워 자신을 반대한 형제와 조카, 왕족을 비롯해 많은 사람을 죽였다. 이에 개국공신이면서도 생명의 위협을 느낀 회계(會稽) 지방의 태수(太守) 왕경칙(王敬則)이 군사를 일으켰다. 반란군과, 동조하는 농민들을 이끌고 출정한 지 10여 일 만에 파죽지세로 큰 성들을 함락하였다. 이때 와병 중이던 명제 대신 정사를 보던 태자 소보권(蕭寶卷)이 이 소식을 듣고 어찌할 줄을 몰라 허둥댔다. 이 모습을 본 왕경칙은 "단공<檀公, 송(宋)의 명장 단도제((檀道濟)>이 서른여섯 가지 계책 중 도망치는 것이 상책이라 했으니 그대 부자(父子)도 어서 도망가는 것이 좋을 것이다" 하며 충고했다. 그러나 이렇듯 당당하던 왕경칙도 제나라 군사에게 포위되어 참수당하였다.

위의 예화에서 단공(檀公)이 말했다는 “서른여섯 가지 계책 중 (상황이 불리할 때에는) 도망치는 것이 상책<삼십육계 주위상책(三十六計 走爲上策)>”이라는 말과 ‘삼십육계 줄행랑’이라는 말을 연관지어 본다.

‘줄행랑’의 ‘행랑(行廊)’이란 대문 옆에 달린 종의 방을 가리키는 것으로, ‘줄행랑을 치다’는 “행랑을 길게 치다”라는 뜻이 된다. 조항범 교수는 이 뜻이 발전하여 ‘길게 행랑을 치듯이 재빠르게 줄달음질을 친다고 하여 “피하여 도망가다”의 뜻이 되면서 ‘줄행랑’에까지 ‘도망’의 의미를 띠게 되었을 것으로 보았다. 한편 김민수 교수가 엮은 ‘우리말 어원사전’은 ‘줄행랑’을 ‘주행(走行)’이 변하여 된 말로 설명하기도 한다

현재 ‘삼십육계’는 병법 이외에도 여러 분야에서 ‘비책(秘策), 비결, 요령’이라는 뜻을 담아 책 이름이나 광고 기법으로 등장한다. ‘삼십육계’의 의미가 확장된 셈이다.


김희진 국립국어원 국어진흥부장 hijin@mct.g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