①“이목구비가 버젓하고서도 말을 데리구 살지 않으면 안 되는 양반보다 전 상놈이 얼마나 부러운지 몰라요. 평양 감사도 저 싫으면 그만이라면서 보기 싫은 여편넬 일생 데리구 살아야 한다는 법은 누가 낸 법인구!”(이무영, 농민)

②화가 머리 꼭대기까지 치솟은 서기상은 발로 마룻방을 굴러대며 소리소리 질렀다. 피보길은 이미 각오했던 일이라 태연하게 맞섰다. “평양 감사도 다 지 허기 싫으면 그망잉께요.” “쩌, 쩌, 저눔 말 받는 뽄새 잠 보소. ……(조정래, 태백산맥)

①은 ‘속담사전’(이기문)에서, ②는 ‘한국의 속담 용례 사전’(정종진)에서 인용한 예다.

①, ②의 작품 속 인물들이 하는 말 중 “평양 감사도 저 싫으면(지 허기 싫으면) 그만”이라는 대목을 보자. ‘한국 속담 활용 사전’(김도환)에서는 이를 “금강산도 제 가기 싫으면 그만이다”와 “나는(날아다니는) 새[鳥]에게 여기 앉아라 저기 앉아라 할 수 없다”와 함께 묶어 가·불가·불필요(可·不可·不必要) 아래의 ‘강요(强要)’로 분류했다.

세 사전은 이 속담을 “아무리 좋은 일이라도 제 마음에 들지 않으면 억지로 시키기 힘들다. 무엇을 하는 사람에게 어떻게 하라고 강요해서는 안 된다”는 뜻으로 풀이했다.

‘평양 감사’의 ‘감사(監司)’란 조선 시대 외관직(外官職)인 ‘관찰사’를 달리 부르는 관명(官名)으로 ‘도백(道伯)’이라고도 했다. 감사는 도(道)마다 한 명씩 두었으므로 오늘날의 ‘도지사’에 해당한다. 전국을 팔도로 나눴을 때, 서북 지역을 ‘평안도’라고 했으니 평안도의 감사가 ‘평안 감사’가 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여러 곳의 감사 중에서 위 속담은 하필이면 ‘평양 감사’를 특정했을까. 또 ‘평양 감사’란 말은 맞는 표현일까. 직급으로 보면 감사는 종2품으로 당시의 장관급인 육조(六曹)의 판서가 정2품인 것에 비하면 그리 높은 편이 아니다.

그런데도 ‘평안 감사’는 인기 있는 보직으로 여겨졌다. 평안 감사가 집무하는 관청이 평양에 있었는데 이 평양이 임금 있는 한양에서 멀리 떨어져 마음에 부담이 적고, 평양 일대가 평야지대로 산물이 풍족했으며, 중국과 통하는 관문이라 진귀한 물건을 볼 수 있었다. 미인이 많았다는 점도 한 요인으로 꼽힌다.

평안 감사가 부러움받는 자리인지라 “평양 감사도 저 싫으면 그만”이라는 속담이 생겨나 민간에 퍼지게 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도 단위의 지역이 아닌 평양에 감사가 있을 수 없다. 평양의 수장(首長)은 ‘도호부사(都護府使)’이지 ‘감사’가 아니기 때문이다. 요컨대 ‘평양 감사’는 ‘평안 감사’를 잘못 말한 것이다.

흔히 쓰는 속담에 ‘평안 감사’, ‘평양 감사’가 더 보여 ‘평안 감사’의 인기를 뒷받침한다. 굶주렸던 사람이 배가 부르도록 먹어 더는 아무것도 부러울 것이 없을 때 이르는 속담이 “내 배 부르니 평안 감사가 조카 같다”이다. 가뭄에 콩 나듯 나타나는 소금 장수가 가장 기다려지고 우대받는 직업임을 나타낸 속담이 “평양 감사보다 소금 장수”이다. 첫아이를 낳은 여자가 여인으로서의 태도나 아름다움이 돋보일 때 말하는 속담이 “첫애 낳고 나면 평양 감사도 뒤돌아본다”이다.

‘평안 감사’라 하든 ‘평양 감사’라 하든 무슨 문제가 있겠느냐고 할지 모른다. 속담이 낯가림이 심하다는 사실을 잊고 하는 말이다. ‘새 발의 피’라고 해야 할 것을 ‘닭 발의 피’라고 하면 ‘새 발’에서 오는 독특한 분위기를 느끼지 못하고 속담 본디의 감칠맛을 놓칠 염려가 있다. 하물며 행정구역 단위가 다르고 그 나름대로 문화가 다름이랴.


김희진 국립국어원 국어진흥부장 hijin@mct.g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