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 1999년 7월쯤으로 기억된다. 대북사업가를 통해 소설가 이문열의 부친 이원철 씨의 사망 소식을 접한 것은.

이 씨는 한국전쟁 당시 수원농대 학장으로 재직하다 북으로 가 농업경제 학자가 됐다. 그의 흔적은 아들의 소설 ‘영웅시대’,‘아우와의 만남’,‘변경’ 등에 고통스런 기억으로 그려져 있다.

그런데 대북사업가를 통해 들은 이 씨의 죽음은 어처구니가 없었다. 감기가 원인이었다. 함경도의 찬바람과 70줄 노인의 쇠약함을 고려하더라도 감기라니. 이문열에게 부친의 죽음을 알려주었지만 그는 믿지 않으려는 듯 끝내 중국 연변으로 달려가 휑한 눈물만 짓고 왔다.

더 놀라운 것은 평양 등 대도시를 제외한 지역의 주민들은 뼈가 부러질 경우 제대로 손을 쓰지 못하고 작은 상처에도 치료가 안돼 큰 고통을 겪는다는 사실이었다. 그것이 99년 북한의 현실이다.

북한이 미사일 발사에 이어 핵실험을 감행했다. 민족의 생존과 자주를 위해 ‘고난의 행군’도 마다않겠단다. 화려한 구호에 고난의 행군도 그럴싸하다.

그러나 평양이 부르짖는 고난의 행군이 북한의 다른 지역에서는 생사를 걸어야 한다. 남한의 인도주의 쌀은 평양과 군이 우선이다. 그들을 모르는 맹목적 온정은 부조리한 체제를 연장시키는 역설로 남을 뿐이다.

밥이 민족보다 절실한 땅에서 민족을 담보로 한 큰 도박이 또 벌어졌다. 이번엔 아무도 판돈을 걸지 않는 아사리판이다. 죽어나는 것은 북한 주민들이다. 사정이 그럴진대 남한의 우리들은 어떻게 해야 하나. 위정자들은 여야로 분열된 채 북핵 대응책에 대해 국론을 통일하지 못하고 있다. 그들은 함경도 칼바람에 쓰러져 가는, 북한 주민들이 겪는 진짜 고난의 행군을 알까.

가을은 저물고 겨울이 오는데….


박종진 차장 jjpark@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