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리에 대한 기억은 눈으로 보는 것보다 길고 깊다. 세월이라는 망각의 늪에 많은 것이 사라지지만 기억의 저편에서 공명하는 소리의 생명력은 자못 끈질기다. 어스름 새벽을 일깨우던 두부장수의 종소리가 그렇고, 한밤중 은근하게 때로는 처량하게 허공을 가로지르던 찹쌀떡장수의 외침도 그런 축에 속한다.

이 땅에서 그들의 정겨운 소리가 사라진 지 꽤 오래된다. 가끔 예상치 못한 곳에서 그들과 비슷한 소리를 들을 때가 있지만 왠지 생뚱맞고 낯설다. 기억의 순연함을 간직하겠다는 억지를 부리지 않는 데도 말이다.

그만큼 시간이 흘렀고 우리의 삶이 달라진 게다. 단선의 시간의 흐름이 앗아간 아쉬움만이 아니라 삶의 뒤척임과 따스함이 빠져 뭔가 허전함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어릴 적 처음 들은 두부장수의 종소리나 찹쌀떡장수의 외침은 단순한 소리가 아니었다. 소리보다 앞서 부지런한 어머니가 있었고, 캄캄한 밤을 감싸는 아버지의 푸근함이 담겨 있었다. 그래서 소리가 사라진 뒤에도 짠한 사랑의 여운으로 가슴에 남았다.

그 기막힌 새벽과 밤의 소리는 지난한 생을 달래주는 안식의 울림이었다.

세월이 빠르게 지나고 편리한 것들이 넘쳐나면서 그 소리는 사라졌다. 어쩌면 앞만 보고 달려온 삭막한 질주와 세파의 시름들이 그 소리를 외면했는지도 모른다.

대신 이제 사람들은 두부장수나 찹쌀떡장수의 소리보다 두부와 떡에 관심이 많다. 예전엔 정(情)을 먹었지만 요즘은 웰빙을 먹는다.

그러나 두부는 많은데 두부장수는 없다. 오랫동안 잊혀졌던 두부장수의 그 종소리를 10년 전 백두산 아래 중국 조선족 마을에서 들은 적이 있다. 소리는 얼마나 빠르게 기억을 환기시키던지.

두부가 건강식으로 다시 각광받는 요즘. 따스함과 정이 넘쳤던 그때의 신새벽을 가르던 그 소리가 그립다. 몸뿐만 아니라 마음도 건강해질 것 같기 때문이다.


박종진 차장 jjpark@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