① 하산길에 문득 누구보다도 화왕산을 사랑했던 화왕산 지킴이 하도암(57) 씨가 생각나 자하 계곡 아래 첫집 화왕산장(불임금묏집)을 찾았다. (중략) 10년 만에 해후한 산인은 올 2월부터 후두암으로 고생하고 있었다. 항암 치료로 탐스러웠던 꽁지머리는 다 빠지고 부기가 오르고 쉰 목소리의 중늙은이에서 예전의 눈빛 형형하고 날렵했던 모습을 찾지 못해 한동안 망설였다.

② 참 오랜만의 해후’다. 조금은 수줍고 앳된 미소를 간직했던 가수 최성수 씨(46)는 어느덧 가을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중년이 돼 있었다. (중략) 재테크 있어서도 가치가 쉽게 변하지 않는 곳을 선호했다. 현재 그는 한강과 남산이 시원하게 보이는 잠원동 쪽에 살고 있다. “10년 전부터 최고였던 곳은 앞으로도 최고라고 생각해요.”

③ 미국 콜롬비아 대학에서의 유학 생활을 접고 귀국하면서 범여권의 정계 개편 중심 인물로 부각돼 오면서도 한사코 현실 정치와 거리를 뒀던 추 전 의원의 사실상 정치 복귀 선언에 정치권은 요동쳤다. 특히 정동영 열린우리당 전 의장과 민주당 분당 이후 3년 반 만의 해후(?)에서 서로 덕담을 주고받으며 지난날 동지애를 되살리는 의미 있는 장면을 연출하기도 했다.

④ 20년 만에 해후한 '남과 여' 20년 후/1966년 작품 ‘남과 여’의 완결 편. 전편의 감독과 주연 배우가 다시 만나 화제가 됐다. 사랑의 감정이 막 싹틀 때 헤어진 안느와 장 루이. 20년 후 안느는 영화 제작자가, 장 루이는 자동차 레이싱 팀의 지도자가 됐다. 안느는 딸로부터 극장 앞에서 장 루이를 봤다는 말을 듣는다. 그녀는 옛 사랑을 영화로 만들 생각으로 장 루이를 만난다.

기사 (1)~(4)를 보자. ①은 화왕산 지킴이 하도암(57) 씨가 생각나 그가 사는 곳에 찾아가 10년 만에 만났다. ②는 ‘스타 재테크’라는 연재 코너에서 가수 최성수 씨를 불러 어떻게 재산 관리를 하는지 인터뷰했다. ③은 추미애 전 의원과 정동영 전 의장이 공개된 장소에서 만났다. ④는 딸의 말을 듣고 옛 애인을 찾아가 만난다. 이 네 기사는 약속이나 한 듯이 한결같이 ‘해후’라는 말을 썼다. 문제는 없는가.

만났다고 무조건 ‘해후’가 되진 않는다. 어떤 조건이 필요하다. 그 조건이 뭔지 찾아보자.

‘해후(邂逅)하다’는 오랫동안 헤어졌다가 뜻밖에 다시 만난다는 뜻이다. ‘해후’의 한자(漢字)도 ‘우연히 만날 해(邂)’, ‘우연히 만날 후(逅)’다. 만났다가 헤어져 다시 만날 때까지의 일정한 공백기가 있어야 하고, 그 만남이 예정된 것이 아니어야 한다. 즉 우연히 만나는 것이어야 한다. (1)~(4)의 만남 중 ‘우연히’ 만난 예는 없다. 모두 예정된 만남이고 의도된 만남이다. ‘우연히' 만난 것이 아니면 ‘해후한’ 것이 아니라 ‘만난’ 것이고 ‘상봉한’ 것이다. 그러므로 ‘해후’를 쉽게 고친다며 ‘만남’으로 하는 것도 적절하지 않다.

그 밖에 “명절 기간 중 하룻저녁쯤은 동네 친구들과의 해후를 위해 비워 놓는다”, “한국의 동갑내기 고아 소녀에게 매달 자기 용돈을 보낸 미국 소년이 40년 만에 그 소녀를 미국으로 초청, 해후했다고 미 피츠버그포스트가제트가 28일 보도했다”, “춘향과 몽룡의 '사랑'부터 춘향을 옥에서 구해내는 '해후'까지”라는 기사 역시 ‘해후’와는 거리가 있다. ‘해후’는 공백기와 우연성을 충족할 때 써야 비로소 그 맛이 살아나는 말이다.


김희진 국립국어원 국어진흥부장 hijin@mct.g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