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사우디 왕국의 국가안전보장회의 사무총장으로 있는 반다르 빈 순탄 왕자(1949년생). 영국과 미국에서 전투기 파이럿 기장 면허을 정식으로 받은 사우디 공군 중령. 그는 1983~2005년까지 주미 대사를 지냈다.

이런 그가 12월 4일자 한국일보에 실린 고태성 워싱턴특파원의 칼럼 ‘서울과 워싱턴의 온도 차이’를 읽었다면 이를 어떻게 받아들였을까? 특히 부시 대통령 부자에게 “아들이요, 형제”라는 말을 듣는 그는 11월 APEC(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 한·미 정상회담에서 부시가 김정일 국방위원장에 대해 한 말에 어떤 반응을 보였을까.

고 특파원은 칼럼에서 썼다. <부시가 호치민 시에서 노무현 대통령을 만나 발언 한 것- “북한이 핵무기를 폐기할 경우 김정일 위원장과 한국전 종전(終戰)선언에 공동으로 서명할 수 있다”-은 미 언론에서 주요하게 다룬 점을 찾을 수 없다>고.

고 특파원은 부시의 발언은 보고싶은 것만 보는 한국 외교의 자기 위안이 아닐까 걱정했다. 그는 정동영 전 통일부장관이 워싱턴에 들러 한 발언에 유의할 것을 바랐다. 정 전 장관은 “지난해 9·19 베이징 공동성명이 나올 땐 그래도 우리의 역할이 있었는데 지금은 그렇지 못한 것 같다”고 했다.

짧게 말해 부시의 ‘핵무기를 폐기할 경우’라는 전제는 평화협정 체결까지 험난한 과정이 기다리고 있음을 가르킨다는 지적이다.

지난 11월 28일자 ‘어제와 오늘’ 칼럼에 나온 ‘부정의 나라’의 저자인 워싱턴포스트 밥 우드워드는 이 책의 서두에 부시 대통령과 반다르 사우디 대사와 나눈 대화를 통해 부시가 북한에 대한 자신의 정책을 굳혔음을 적고 있다.

텍사스 주지사였던 부시는 이미 공화당 대통령 후보로 굳혀진 2000년 6월 75세 어머니 바바라의 생일 파티에서 반다르를 만났다.

<부시는 그에게 말을 걸었다. “외교 참모들이 세계 정세를 브리핑할 때 북한 문제가 꼭 등장한다. 그런데 내가 왜 북한 문제에 신경을 써야 하는지 잘 모르겠다. 네가 국제 문제를 잘 아는 놈(asshole)이니 설명 좀 해달라”

반다르가 설명했다. “휴전선 근처에는 미군 3만8,000명이 배치돼 있다. 그런데 북한과 충돌이 발생하면 주한미군이 절반쯤 희생될 수 있다. 북한이 생화학전이나 재래식 공격을 감행할 경우 1만5,000명은 숨질 것이다.”

부시가 대답했다. “음, 내게 브리핑 하는 ‘놈들(assholes)’이 핵심을 말해주길 바랐는데 그렇치 않았잖아…. 나는 그동안 북한에 대해 반쪽 얘기만 들은 셈이군”

반다르가 말을 이었다. “이젠 북한문제에 신경 안 쓸 거죠. 중요한 것은 대통령이 되면 주한미군을 전부 철수시켜야 한다. 그러면 휴전선에서 충돌이 발생해도 소규모 지역분쟁으로 끝난다. 그러면 당신은 한반도에 개입할지 말지, 아니면 다른 방안을 찾을지 결정할 충분한 시간적 여유를 갖게 된다.”>

반다르의 어떤 면에선 황당무계한 이런 대북 인식은 지난 10월 20일께 나온 그의 평전 ‘왕자-세계에서 가장 음모적인 반다르 빈 설탄 왕자의 비밀스런 이야기’에서는 다르게 표현되어 있다.

‘왕자’는 반다르와 영국 조종사 학교 동기생이자 인터넷 업체 CEO였던 윌리엄 심프손이 2003년부터 준비해 쓴 것이다. 반다르는 심프손에게 여러 차례 러시아, 중국 등 여러 공산권 국가들과는 막후 협상을 벌였지만 북한은 그의 영향 밖이었음을 술회했다.

반다르가 부시 대통령 후보를 만나고 당선이 확정된 12월 10일께 클린턴은 반다르의 알선으로 팔레스타인의 아라파트를 백악관으로 초청했다.

선거에서 참패가 예상되는 바라크 이스라엘 수상과 팔레스타인 자치기구 간의 평화협정을 체결시키기 위해서였다.

‘왕자’에서 클린턴은 회고했다.

<반다르 대사에 의하면 아라파트가 미국의 평화 중재안을 받을 것이라고 전해왔다. 그러나 아라파트는 합의 없이 백악관을 떠나려 했다.

나는 아라파트에게 말했다 “이럴 줄 알았으면 북한에 가서 그들과 핵무기, 국교문제를 협의할 게 나을 뻔했다.”

아라파트는 눈물을 글썽거리며 말했다. “하느님 제발 그곳으로 가지 마세요. 그렇게 해서는 안됩니다.” “그럼 당신은 이번 딜(deal)을 받겠소.” “그렇게 하겠소.”

클린턴은 아라파트가 “독립전쟁으로 4,000명의 팔레스타인들이 죽은 데 대해 비극이다”며 “제네바에서의 평화회의를 약속했다”고 2005년 2월 그때를 회고했다. 그는 마지막 중동 평화에 대한 ‘좋은뉴스’가 되었다고 자랑했다.>

클린턴의 북한에 대한 인식은 반다르가 부시에게 북한을 이야기한 5개월여가 넘어 일어났다. 반다르는 우드워드에 의하면 2000년 6월 이후 2005년 미국 대사직을 떠날 때까지 9차례 만났지만 북한에 대해 부시에게 다른 이야기한 흔적을 찾지 못했다.

부시의 북한 및 김정일 국방위원장에 대한 언급은 2002년 2월 ‘북한은 악의축’ 발언 이후 7번째에 ‘종전 선언’이란 말이 나왔다. 고태성 특파원의 지적처럼 이 ‘선언’이 미국 언론의 주목을 받지 못했다

반다르의 일면 황당한 북한인식이 부시를 아직도 사로잡고 있기 때문일까. 반다르의 대답이 있었으면 좋겠다.


박용배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