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 2007년 12월 19일에 누가 한국의 대통령이 될까.

언론에는 1년 여를 앞두고 여러 후보가 떠올랐다. 그러나 어느 구석에도 “우리가, 내가, 새 대통령을 ‘만들겠다’”는 기사는 보이지 않는다.

지난 12월 7일 미국 공화·민주 양당 인사들로 구성된 이라크연구그룹을 대표해 전 국무장관 제임스 베이커 3세(1930년생)는 ‘연구보고서’를 냈다. 그 이전 10월 5일 베이커는 그의 제2 회고록 ‘열심히 일하고, 공부하고 그리고 정치에서 손떼’를 냈다. 이 책의 부제는 ‘예기찮은 공직생활로부터의 모험과 학습’이다.

460쪽으로 된 이 책에 ‘대통령이라는 권력을 잡기보다 대통령을 만들기 위해 진력한 사람’의 이야기가 재미있게 적혀 있다.

현직 43대 대통령 조지 W 부시의 아버지인 41대 조지 부시 전 대통령의 테니스 게임 파트너였던 베이커는 본래 민주당원이었지만 1970년 아내가 죽자 하원의원을 버리고 상원에 도전한 부시의 권유로 공화당원으로 당을 옮겼다.

할아버지인 변호사 에디슨 베이커는 텍사스에서 전통적으로 공화당을 배척하는 보수 우파 민주당원이요 실용주의자였다. 그의 가훈은 책의 제목인 ‘열심히 일하고 공부하고···’였다. 아버지인 에디슨 2세도 변호사였다. 그는 아들에게 수신제가(修身齊家, 행실을 닦고 집안을 바로 잡음)의 지침을 내렸다. “사전 준비가 나쁜 결과를 방지한다(prior preparation prevents poor performance).” 베이커는 이를 ‘5P’로 부르고 있다.

베이커의 회고록에 나오는 ‘가훈’과 ‘지침’를 동양의 유교에서 찾으면 이에 합당한 말이 나온다. ‘열심히 일하고…’는 2,500년 전의 공자 사상을 요약한 논어의 1장 1편 ‘학이시습지, 불역열호(學而時習之, 不亦說乎)’라 할 수 있다. ‘배우고 실천하니 기쁘지 아니한가’라는 뜻이다.

베이커 아버지의 5P 지침은 ‘유비무환(有備無患, 준비가 있으면 근심할 것이 없다’일 것이다.

베이커는 1970년 조지 부시를 도운 후 가훈인 ‘정치에서 손 떼!’를 잃었다. 그는 75년 포드 대통령 때 상무부 차관이 되어 워싱턴 공직사회에 들어섰다. 이어 76년 11월의 대선을 앞두고 2월에 그는 포드 선거대책위 선거인단을 추적하는 부위원장이 된다.

이때 그는 공화당 지명전에 후보로 등장해 도전하는 캘리포니아 주지사 로널드 레이건을 적으로 하는 선거전을 펼친다.

이은 대통령 선거전에서 그는 배운다. “너는 대통령이 되려고 하지 말고 만들어라.” 그는 대선에서 지미 카터를 적으로 싸운다. 그가 실천한 것은 끊임없는 사전 조사와 분석으로 TV토론에 나설 포드를 닦달하는 것이었다.

그가 76년 대선에서 얻은 학습은 “도덕성이 부족하면 아무리 현직 대통령이라도 떨어진다”는 것이었다. 포드는 전임 닉슨 대통령의 사임으로 선거를 하지 않고 부통령에서 대통령이 되었다. 그후 그는 닉슨을 사면함으로써 카터를 이길 수 없게 됐다.

베이커는 76년 고향인 휴스턴에 돌아와 아버지의 가업을 잇는다. 78년에는 부시가 베이커에게 주 검찰총장 선거전에 나설 것을 권유했다. 그는 선거에서 떨어졌다.

이때 민주당이 아성인 텍사스에서 주지사를 지내고 당적을 옮겨 공화당 상원의원이 된 존 타워가 선거운동하는 그를 만났다.

“베이커, 당신은 모를 거야. 우리는 지금 정치라는 더러운 사업을 하고 있는 거야.” “의원님은 자신의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이지요. 나는 정치가 더럽기보다 신선한데요.”

베이커는 회고록에 적고 있다. “비록 떨어졌지만 나는 아직도 정치가 더러운 것이라고 생각치 않는다.”

낙선 후 며칠 안 되어 부시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 부시가 79년 공화당 대통령 지명전에 참가하겠다는 것이었다. 76년 귀향 이후 여러 차례 그는 부시와 80년 대선에 대해 이야기했다.

베이커가 생각하는 ‘신선한 정치’ 속에는 두 가지가 있었다. ▲법을 지켜라 ▲언론에 결코 거짓말을 하지 말라.

그는 여러 차례 남들이 ‘현실주의자’라 부르지만 자신을 ‘실용주의자’라고 주장했다. 그는 실용주의를 요약했다. <“미국 국민은 국가이익이라는 규범 속에 설명되지 않는 어떤 정책도 지지하지 않는다.” “정치에서 상처를 입었을 때는 곧 피흘리는 것을 막아야 한다.” 그것이 바로 ‘실용주의(pragmatism)’다.>

부시는 79년 1~5월 아이오아, 뉴 햄프셔 공화당 예비선거에서 레이건을 눌렀다. 그러나 부시는 998표의 선거인단을 확보하고 베이커의 권유로 선거를 접었다.

베이커는 67세의 레이건에게 승산이 있으며 55세인 부시에게는 그후가 있다는 ‘참신한 정치’를 제시했다.

레이건은 80년 7월 부시를 부통령으로 지명하고 베이커를 선거대책위 고문으로 활용, 현직 대통령이었던 카터를 눌렀다.

베이컨에게 레이건은 유학(儒學) 정치, ‘참신한 정치’를 이해하는 대통령이었다. 5번의 대선에 참가해 3명의 현역 대통령 선거참모를 지낸 베이커가 내린 대선에 대한 결론은 유교적이다.

‘사람으로서 할 수 있는 일을 다한 뒤에는 천명(天命)을 기다리는 것(진인사 대천명, 盡人事 待天命)’.

이를 실용적으로 해석하면 ‘대통령이 되려고 하지 말고 대통령을 만들어라’는 의미이다.

대선 주자들은 꼭 베이커의 회고록을 읽어보기를 바란다.


박용배 언론인